무아지경에 빠져버린 미니멀리스트 (feat. 불교철학, 흄,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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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일 2022. 01. 29.
  • 데카르트는 화롯가에 앉아서 자신이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데카르트는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의 감각과 경험을 의심하지만, 의심의 골이 깊어지면서 나중에는 수학과 기하학과 같은 학문을 의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 거죠.
    그런데 문득 데카르트는 자신이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내가 의심을 할 수 있으려면 의심하는 내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의심도 생각의 일종이죠. 그래서 데카르트는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내가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은 주체의 철학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신의 피조물일 뿐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주체가 된 겁니다.
    그런데 “나”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할까요? “나”라는 것이 정말로 주체적으로 존재할까요?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 하겠지만 “나”라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불교 철학에서는 “나”라는 주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라고 말합니다. 서양 철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이 있습니다. 흄은 “자아”라는 것은 없으며 자아라고 생각되는 것은 단지 감각과 생각의 다발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러셀은 “나는 김필영이다”라는 문장에서 주어인 ‘나’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사태를 기술하는 불완전한 기호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질문은 “나는 존재하는가?”입니다. 저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입장인 불교 철학과 흄 그리고 러셀의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댓글 • 238

  • @user-mv6hy3pe4s
    @user-mv6hy3pe4s 2 년 전 +23

    불교철학의 오온의 무상함은 나라는 껍데기, 생각, 감정, 오감의 일체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생각, 감정, 오감을 쓰며 살 수 밖에 없죠. 생각, 감정, 오감이 무상하나 우리는 그것을 쓰고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무상 고 무아'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합니다. 여기서 일컷는 변하는 무상한 것들이 설명해주신 세 가지 철학에서 말하는 '나' 인 것 같습니다.
    반면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에서의 두 나는 다른 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생각하는 내가 있다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나(오온의 '식'과는 다른 개념)를 깨닫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데카르트는 그 넘어를 본 것이 아닐까요.
    나는 내가 아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내 곁에서 걷고 있는 자.
    이따금 내가 만나지만
    대부분은 잊고 지내는 자.
    내가 말할 때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자.
    내가 미워할 때 용서하는 자.
    가끔은 내가 없는 곳으로 산책을 가는 자.
    내가 죽었을 때 내 곁에 서 있는 자.
    그 자가 바로 나이다.
    -후안 라몬 히메네스(라틴 아메리카 시인)-

  • @sucovlog6009
    @sucovlog6009 2 년 전 +13

    엄마가.오셨다.
    팔순 노인이시다.
    매일 밥을 차려드리고 행복하게드신다.
    그리고 바로 심심하시고
    자식들 때문에
    무릎때문에 괴롭다고 하신다.
    즐거움은 티비볼때뿐.
    사고하지않을 때이다.
    행복은 사고하지 않고있을때 뿐인가싶다.
    그러고보면 무아사상이 맞는듯도 싶다.

    • @user-nq7oz1iv9x
      @user-nq7oz1iv9x 28 일 전

      근데 불가의 이야기는 현상을 바라보는 지혜일 뿐이지.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되요. 인간이 그렇게 살순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 @RockRock-zm4pq
    @RockRock-zm4pq 2 년 전 +11

    평소 관심 많았던 주제인데
    이렇게 정리되는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anne3025
    @anne3025 2 년 전 +15

    삶에 대한 사유 뿐 아니라 삶의 무게를 살짝 경감시켜 주는 박사님의 유머러스한 인사이트를 사랑합니다 늘 함께 해주셔요 ♡

  • @user-xm6ob4jh7u
    @user-xm6ob4jh7u 2 년 전 +3

    진짜 깊고 생각이 많아지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 @8stardust
    @8stardust 2 년 전 +8

    대단히 쉽고 심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해도) 대단하십니다. 영상 너무 고맙게 보고 있습니다.

  • @Best-zd7kh
    @Best-zd7kh 2 년 전 +19

    철학에 대해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어쩌다 이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되어서 정말 좋네요 ^^ 매일매일 챙겨 보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jw_p4887
    @jw_p4887 2 년 전 +81

    5분 뚝딱 철학은 정말 정말 개인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출발할 때는 단편적인 조각 조각들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레고 맞추기 게임하듯 하나 하나 종합해서 맞춰가는 즐거움이 너무 좋습니다.
    김필영님은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는데,
    정리하고 다시 종합하고 또 정리하고 또 쉽게 종합하는 과정이..
    철학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부럽고 닮아가고 싶은데, ㅎㅎ 능력이..크크
    감사합니다.

  • @user-mo6zy4dt1l
    @user-mo6zy4dt1l 2 년 전 +3

    이 채널 평소에도 즐겨 보는데 이번 영상은 더욱 유익하네요..

  • @user-zu2sh8op7z
    @user-zu2sh8op7z 2 년 전 +2

    너무너무 좋은 영상이네요ㅠㅠㅠ정말 감사합니다

  • @BuskerK
    @BuskerK 2 년 전 +7

    대단하십니다...동서양의 철학을 아우르시다니...^^

  • @user-kn2hb1uc1z
    @user-kn2hb1uc1z 2 년 전 +1

    영상이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 @samma-sati
    @samma-sati 2 년 전 +1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 @user-lv8cm1tt9f
    @user-lv8cm1tt9f 년 전 +1

    선생님 강의를 접할 수 있음이 행운이며 감사합니다...

  • @user-il1fh7rf9x
    @user-il1fh7rf9x 2 년 전 +10

    대단한 정리입니다. 이렇게 간단히 설명하시다니 학식이 아주 깊으십니다 고맙습니다

  • @hihun0829
    @hihun0829 2 년 전 +1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user-mn6iq9ft4f
    @user-mn6iq9ft4f 2 년 전 +6

    러셀이 저런 탁월한 분석가일줄이야... 설명 감사합니다.

    • @scz8333
      @scz8333 2 년 전 +1

      버틀런드 러셀의 1950년대 인터뷰 : 러셀의 할아버지가 엘바섬을 방문해 나폴레옹을 만났다고 합니다.
      krplus.net/bidio/ZLOQpn9rZK-ZfHI
      러셀의 할아버지는 훗날 영국이 프랑스 혁명에 지나치게 개입 전쟁 수행했던 것을 이렇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국민들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선택할 권리는 존중받아야 하고, 다른 국가들이 전쟁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진압했던 것은 지나쳤던 것이었다고. 20대~30대 무렵 엘바섬의 나폴레옹을 만났고, 19세기 중반 영국 수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수상이 된 후 나폴레옹이 꿈꾸었던 더 나은 민주주의 향한 입법으로 귀족들 소수만 참여하는 입헌군주제를 대중이 참여하는
      쪽으로 개선 노력.
      ---------------> 믿기지 않는 것이 2차대전 전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할아버지가 나폴레옹 전쟁 세대라는 것.
      ---------------> 1810년대에 영국의 젊은 의원이 적국의 최고 지도자가 유배된 섬을 방문해 대화했다는 것도 놀랍군요.
      ---------------> 저 당시 오늘날과 같이 직접 선거로 뽑힌 하원의원 아닌 세습직일 수도 있는데 저런 유연함을 갖춘 것도.
      개인적으로도 나폴레옹-프랑스는 외국의 지나친 간섭 무력 개입에 의해 진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혁명은 엄청난 유혈을 불러왔지만, 그 유혈의 상당 부분은 외세의 극단적 혁명 진압 개입으로 초래된 측면도.
      부패 무능한 왕정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권과 공화정 수립은 정당했었고 프랑스는 그 부분에서 인류에게 큰 기여를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내부의 비인도적인 학살 처형과는 관련 없고, 프랑스 혁명 진압 위한 외세 개입과의 투쟁 과정에서 등장했던.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영국은 국익 때문에 프랑스 민주주의 발전을 짓밟았던 성격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강대국들 특히 패권국들은 기본적으로 깡패입니다.
      그나마 인류는 교양있는 깡패가 패권을 장악한 것에 안도해야 할 수도.
      자신들의 개입과 전쟁 수행이 국익 때문임을 인정하면서, 패배한 상대를 존중하는 깡패.

  • @stevenk1591
    @stevenk1591 2 년 전 +13

    많은 철학자들이 범하는 오류 중의 하나가 인간 중심으로 다른 동물의 사고와 행동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다람쥐가 괴로운지 즐거운지를 어떻게 알 수 있죠? 다람쥐한테 '나'라는 개념이 없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 이러한 류의 사고방식은 결국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하다는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user-cj3pc4lt1r
      @user-cj3pc4lt1r 8 개월 전 +2

      다람쥐가 괴로울 땐 모르겠지만 즐거운 순간은 보입니다. 두,세마리 이상이 까불며 놀지요. 즐겁지 않은데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테죠. 물론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비,새들..개,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지요. 어떻게 생각하면 자아의식이 없기 때문에 동물들이 인간에 비해 괴로움보다 즐거움을 더 누릴 것 같기도 합니다.

    • @user-uz9se2ly7n
      @user-uz9se2ly7n 7 개월 전 +3

      동감입니다
      다람쥐가 자아가 없다는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 @user-ig1fn8bp4d
      @user-ig1fn8bp4d 2 개월 전

      자아가 없는 게 더 높은 경지일 수도 있어요 ㅎㅎ

  • @user-xj6ju8vu6q
    @user-xj6ju8vu6q 2 년 전 +16

    초기불교철학을 흄의 철학과 빗댄 것은 정말 인상깊네요. 데카르트의 합리론은 흄의 경험론을 거쳐 이 둘의 종합인 칸트의 비판서로 나아가는데, 칸트가 경험론 속에서 이성의 역할을 구원해내는 과정은 서양철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초기불교철학을 생각할때마다 왠지 칸트로 귀결되었는데 이래서 그랬었나봐요! 신기...

    • @user-of6es5eg4j
      @user-of6es5eg4j 2 년 전 +1

      칸트로 귀결된다니, 한자경 교수님 저 불교철학의 전개 추천드립니다.

    • @user-xj6ju8vu6q
      @user-xj6ju8vu6q 2 년 전 +1

      한자경 교수님도 불교철학과 칸트철학을 같이 다루시는걸로 아는데 읽어본적은 없습니다... 추천 감사해요!

    • @scz8333
      @scz8333 2 년 전 +5

      ( 칸트가 경험론 속에서 이성의 역활을 구원해내는 과정~ )
      ---------------------> 칸트 개인적 생각일 뿐입니다. 칸트에 깊게 감동받은 이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경험론 속에서 인간 이성이 구원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아마도 영원히 알 길이 없을 겁니다.
      ( 초기불교철학을 생각할때마다 왠지 칸트로 귀결~ ) ----------------------------> 그 역시 일부 사람들의 생각일 뿐.
      불교는 단순한 철학이 아닙니다.
      수행이 동반되는 가운데 체험이 필수적인 영역입니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이성과 논리로만 전개됩니다. 불교는 이성과 논리 아닌 다른 영역도 중요합니다.
      불교의 5온, 색수상행식 ------------------------> 무엇을 나타낸 상징인지 머리만 굴려야 알 길이 없습니다.
      실제 불교의 영적 수련을 통해서 경험해야만 더 5가지가 무엇을 나타내는 기호인지 비로서 알게 된다고 보아야.
      부처의 호흡 수련 흉내라도 내보면 그 즉시 차이점을 느낄 것.
      극한의 경지는 커녕 맛보기 수준도 안되는 지극한 첫 단계의 호흡 수련만 경험해도 느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종교 없고 종교인 될 마음도 전혀 없지만, 불교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특히 호흡 수련에 대해 단순히 책을 구입해 자습하는 형태로 호흡 수련을 조금 해보았습니다.
      1회 호흡에 1분 정도로 1시간 정도 호흡에 집중하다 뭔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무아지경은 절대로 아닙니다. 무아지경에 도달하려면 엄청난 수련을 스승에게 지도받으면서 해야할 것.
      철학자들이 이성과 논리로만 불교를 이해하려 한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저런 기초적인 경험으로 바로 알게 될 것.
      맛보기도 안되는 경험에서 느낀 무엇이,
      정말 실제 존재하는 무엇일지 아니면 그 마저도 내 정신작용의 착각일지, 알 길이 없었지만.
      냉혹한 경험론은 그런 체험 조차도 수련이라는 체험-경험에 바탕했다고 할 겁니다. 즉 경험론은 종교 수행에도 적응 가능한.
      사실 수행 자체가 경험일 겁니다.
      우주 >>>>>>>>>>>>>>>>>>>> 소리 >>>>>>>>>>> 언어 >>> 문자+기호+숫자 ...
      인간이 수행하는 지적인 모든 작업은 문자기호숫자... 등으로 표현되고 정리됩니다.
      소리를 넘어선 우주를, 소리 조차도 다 담지 못하는 언어로, 그 언어 조차도 다 표현할 수 없는 문자기호 체계로 서술합니다.
      따라서 저런 방식으로 정리된 인류의 모든 종교경전-과학적-철학적-수학적 작업의 결과물은 오류를 내포합니다.
      종교경전에 담을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겁니다. 과학-철학-수학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하는 겁니다.
      즉 문자-기호-숫자-논리 체계로만 접근하면 오류 피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에선 수련-체혐의 비논리적 비문자적 비이성적인 영역이 존재하는 겁니다.
      문자와 논리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기에.
      ----------------------------> 말로 아무리 무아지경 설명해도 알 길이 없는, 오직 체험-경험만으로 이를 수 있을 겁니다.
      자연과학 조차도 저런 취약점을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운명.
      생각해보길 자연과학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시간-공간-질량 ... ------------> 언어 측면에서 명사형.
      ---------------------> 언어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이미 시간과 공간과 질량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인양 착각하고서 출발합니다.
      ---------------------> 하지만 인류는 아직 까지 시간과 함께 하지 않은 공간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고.
      실험과 검증이라는 칼날을 가진 자연과학의 밑바닥 기반이 저렇게 허무한 판에,
      철학과 수학의 밑바닥은 얼마나 탄탄할지 조금만 의문을 가져본다면 바로 알게 될 겁니다. 칸트 철학 조차도 언어의 유희라는 것.
      칸트가 언급한 시간, 공간...등의 범주 구분 냉정하게 생각해보길.
      그러한 범주 구분에 납득할만한 기준이 존재하는지 부터 지극 의심스럽고, 그 범주 역시 고대 그리스 철학 흉내낸 정도.
      설마 칸트가 공간과 독립된 다른 실체들을 증명하고서 그런 개념들을 다루었겠습니까?
      칸트 철학은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불교가 칸트 철학으로 귀결된다고 보기엔 자격 미달입니다.
      검증 불가한 무정의 성격의 용어들이 잦고 정의를 한다고 한들 제대로 정의되지도 않는 대상에,
      멋대로의 범주 구분, 인간 뇌의 작동에 대한 무지 상태에서,
      ---------------------> 감히 우주의 본질에 다가섰다고 하기엔 너무나 부실, 칸트만이 아닌 모든 철학과 이성의 한계.
      칸트, 개인적으로 이렇게 판단합니다.
      뉴턴 고전역학-물리학에서 거둔 어마무시한 성과를 흉내내어, 서양철학에 그런 방식을 맛보기로 도입한 정도.
      보잘 것 없는 수준의 이성논리 도구로 우주의 본질에 도전했기에 불가능한 과업 -------------------> CAN ' T
      칸트에 너무 감동만 하지 말고, 혹시나 칸트가 CAN ' T 아닐지 의문도 가져야.
      경험론은 인간이 결코 버릴 수 없는 최후 최소한의 무기이며, 그나마 인간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근거지.
      경험 이전의 선험? ------------------------------------------> 선험이라는 개념 조차도 경험에 기생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이런 비유들이 있죠.
      컴퓨터 출고될 때 OS 깔리기 전에 미리 탑재되는 BIOS, 갓 태어난 생명체의 유전 정보 등을 선험에 대비시키는.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그 마저 경험에 의존하는 겁니다. 컴퓨터 등장 이전의 오랜 세월 인류의 좌충우돌 경험이 반영된.
      인간이 태어날 때 유전자에 선험적으로 입력된 무언가가 존재한다?
      ------------------> 갓난 아기가 처음 부터 탑재한 그것들, 과연 정말로 선험적인 무엇일까요?
      그 입력의 근거인 유전자 어떻게 존재하는지 생각해본다면, 작은 물질 조각들의 엄청난 시간의 시행착오 조합-경험의 산물일 것.
      갓난 아기의 유전체와 독립된, 갓난 아기의 뇌 세포 및 신경계와 독립된 비물질적인 선험적 탑재물이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선험에
      해당할 것이지만 그런 단계로 접어들면 이미 인간 이성-논리와는 안드로메다급 거리가 있게 됩니다. 즉 현 인류 단계의 과학-철학-수학
      으로는 접근 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일 것. 더군다가 그런 선험적 무언가 조차도 현 인류 기준으로 선험이지, 더 높은 차원에선 경험의
      산물일 수도 있고.

    • @scz8333
      @scz8333 2 년 전 +1

      버틀런드 러셀의 1950년대 인터뷰 : 러셀의 할아버지가 엘바섬을 방문해 나폴레옹을 만났다고 합니다.
      krplus.net/bidio/ZLOQpn9rZK-ZfHI
      러셀의 할아버지는 훗날 영국이 프랑스 혁명에 지나치게 개입 전쟁 수행했던 것을 이렇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국민들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선택할 권리는 존중받아야 하고, 다른 국가들이 전쟁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진압했던 것은 지나쳤던 것이었다고. 20대~30대 무렵 엘바섬의 나폴레옹을 만났고, 19세기 중반 영국 수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수상이 된 후 나폴레옹이 꿈꾸었던 더 나은 민주주의 향한 입법으로 귀족들 소수만 참여하는 입헌군주제를 대중이 참여하는
      쪽으로 개선 노력.
      ---------------> 믿기지 않는 것이 2차대전 전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할아버지가 나폴레옹 전쟁 세대라는 것.
      ---------------> 1810년대에 영국의 젊은 의원이 적국의 최고 지도자가 유배된 섬을 방문해 대화했다는 것도 놀랍군요.
      ---------------> 저 당시 오늘날과 같이 직접 선거로 뽑힌 하원의원 아닌 세습직일 수도 있는데 저런 유연함을 갖춘 것도.
      개인적으로도 나폴레옹-프랑스는 외국의 지나친 간섭 무력 개입에 의해 진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혁명은 엄청난 유혈을 불러왔지만, 그 유혈의 상당 부분은 외세의 극단적 혁명 진압 개입으로 초래된 측면도.
      부패 무능한 왕정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권과 공화정 수립은 정당했었고 프랑스는 그 부분에서 인류에게 큰 기여를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내부의 비인도적인 학살 처형과는 관련 없고, 프랑스 혁명 진압 위한 외세 개입과의 투쟁 과정에서 등장했던.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영국은 국익 때문에 프랑스 민주주의 발전을 짓밟았던 성격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강대국들 특히 패권국들은 기본적으로 깡패입니다.
      그나마 인류는 교양있는 깡패가 패권을 장악한 것에 안도해야 할 수도.
      자신들의 개입과 전쟁 수행이 국익 때문임을 인정하면서, 패배한 상대를 존중하는 깡패.

    • @jwoon2000
      @jwoon2000 년 전

      @@scz8333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가 된것은 언급하시지 않는군요. 프랑스 혁명정신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나폴레옹의 대관식으로 변질되었고 영국은 초기엔 대휵의 왕권국가들을 거들어 반혁명에 가담했지만 나중엔 강력한 프랑스 나폴레옹 전제군주에 대항한것으로 보는게 적절한거 같습니다.

  • @I_love_philosophy
    @I_love_philosophy 2 년 전 +1

    좋은영상 너무 감사드립니다

  • @honeykris5113
    @honeykris5113 2 년 전 +5

    다람쥐는 심심하다는 걸 알 수도 없고 지루하다는 걸 알 수는 없지만.. 고통과 두려움은 느끼지요.
    개는 지루함을 느끼고 재밌다는 걸 느끼며,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고요.
    인간은 지루함도 재미도 느끼지고, 지루하다고 재밌다고 생각도 하지만,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를 인식합니다.
    헤겔이었나요. 어느 책에선가 본 것 같은데..
    본질만을 파고들면 현상을 무시하게 된다고..
    물이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물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모든 물이 다 같다고 해서 파도가 바다가 비가 구름이 얼음이 다 같은 것도 아니니... 철학은 정말 관점에 따라 파고들면 들수록 재밌는 학문인 것 같습니다.
    일반인인 저는, 너무 현상에만 집착하지도 말고, 너무 본질에만 과몰입하지 않도록.. 유동적이고 찰나적인 나를 위하여 과하지 않은 욕망을 추구하다가 기꺼이 다른 존재가 될 수 있게 놓을 준비도 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늘 재밌게 알차게 보고 있어요.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 @7080fusionArt
    @7080fusionArt 2 년 전 +15

    시즌2는 각각의 영상이 단편이라기보다 에피소드 처럼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시리즈라고 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ㅎㅎ 다들 즐거운 연휴 보내시기바랍니다~

  • @luki7954
    @luki7954 2 년 전 +3

    오늘 영상의 주제와 관련해서 불교, 흄, 러셀의 대표적인 책도 함께 추천 부탁드립니다.^^

  • @user-gf7jr8eq9o
    @user-gf7jr8eq9o 2 년 전 +1

    감사합니다.

  • @user-sk4cr9kk1g
    @user-sk4cr9kk1g 2 년 전 +2

    모든 것은 나타났다 사라질 뿐 ,,,
    감사합니다 ^^

  • @darae2348
    @darae2348 2 년 전 +3

    새해 큰 선물 감사합니다

  • @user-ch8ev3nu1h
    @user-ch8ev3nu1h 2 년 전 +1

    좋은 영상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매일 나는 왜 돈을 버는가에대해 고민중인데, 어느정도 답이 나온것 같습니다

  • @user-ux7il6lu7k
    @user-ux7il6lu7k 2 년 전 +3

    월요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오분뚝딱철학~

  • @AIArtistNoahC
    @AIArtistNoahC 2 년 전 +8

    저도 고양이를 키우며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전부터는 고양이를 열반고양이라 부르고 스승으로 모시고 있지요

  • @user-su4ew3hp1n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삶의 지평이 넓어진 것 같아요

  • @user-bh5yk3zi5u
    @user-bh5yk3zi5u 2 년 전 +2

    멋진 영상이네요. 생각을 덩어리로 묶어 이렇게도 바라볼수나 하고 참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 @smokemirror1583
    @smokemirror1583 년 전 +2

    러셀도 불교 철학을 긍정적으로 보았었군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user-zd9st9wj2y
    @user-zd9st9wj2y 2 년 전 +2

    대단히 감사합니다.ㅎ

  • @Postles_of_Philosophy

    흄 별로 안좋아하는데 감각의 다발이론은 좋아합니다. 인생 다 똑같다고 왜사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답변 중 하나니깐요. 고정된 내가 그냥 사는게 아니라 세상에 살면서 마주하며 수없이 느끼고 변화하는 하루 하루의 삶이니깐요. 늘 다른 인생이 되겠죠.
    스토아 철학자들은 나라는 관념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 일종의 영혼을 상정하죠. 그 영혼이 진짜 나로서 나의 인생을 조망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무아지경이라면 무아지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user-lm1mu5er9b
    @user-lm1mu5er9b 2 년 전

    감사합니다

  • @dongsupark2124
    @dongsupark2124 2 년 전 +21

    의외로 불교철학이 엄청 정확하네요. 교수님 책 2권은 아직 ebook으로 안나왔네요 두권다 주문해서 봐야 겠네요.

  • @baramillseo5610
    @baramillseo5610 년 전 +1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아주 훌륭한 고찰 입니다. 감사합니다.

  • @dongsupark2124
    @dongsupark2124 2 년 전 +6

    사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 하려면 육체와 정신 물질과 정신의 관계에 대해서 좀더 연구를 해야죠 ^^ 흄에 대해서는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영상 즐겁게 봤습니다.

  • @user-xt8kj1jc8u
    @user-xt8kj1jc8u 2 년 전 +2

    어려운 내용인데 끝에 마무리 멘트에 느낌이 확 옵니다.

  • @user-dg2yx4dt7b
    @user-dg2yx4dt7b 2 년 전 +65

    이것은 유투브가 아니다. 그저 화소들의 RGB값이 정해지는 전자기파의 주파수가 일정한 패턴으로 바뀌고, 다양한 크기의 진동이 일정한 패턴으로 있는 것일 뿐이다.

    • @unlysiss
      @unlysiss 년 전 +2

      그것들조차도 허상이 될수 있지 않을까요

  • @dpi5569
    @dpi5569 2 년 전 +3

    마지막 문구가 ... 귀에 쏙 들어오네요... 다람쥐처럼 사는것...^^

  • @user-su2vh4hp2d
    @user-su2vh4hp2d 년 전 +1

    내용너무좋다

  • @user-jz5ns3er1y
    @user-jz5ns3er1y 2 년 전 +1

    어렵다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 또 봐야할 영상

  • @ML-se1do
    @ML-se1do 2 년 전 +1

    죄송합니다 교수님 영상 항상 잘 보지만 잠이 안올때 틀어놓으면 잠이 너무 잘와여 항상 감사합니다

  • @ahfmsmstkfka
    @ahfmsmstkfka 2 년 전 +1

    마지막 음악과 주제가 너무 잘 맞네요 나에 최대한 덜 집착하는 것이 진정 나다운 삶인 것도 같다는 생각 해봅니다

  • @viewtheviewers4804
    @viewtheviewers4804 2 년 전 +2

    짱 👍

  • @sejunelee5106
    @sejunelee5106 년 전

    좋은영상 감사합니다람쥐.

  • @jwoon2000
    @jwoon2000 년 전 +3

    대륙의 합리론 철학이 거북했었는데 영국 경험론 - 분석철학 관련 책을 읽고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저는 종교 만큼이나 대륙철학을 헛소리라고 항상 생각해왔죠 고딩때부터.. 현대 프랑스철학은 정말이지.. 정확하고 깔끔한 영상 잘봤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 @mrben6310
    @mrben6310 2 년 전 +2

    무아라는 경지는 서양철학의 단편적인 표현의 비슷함으로 동일시하기엔 모자른면이 많죠

  • @user-ok5ce4pb6j
    @user-ok5ce4pb6j 2 년 전 +1

    헉 Feat.불 .. 못참지 빨리 운덩 다녀와서 봐야겟다

  • @jeanpark8638
    @jeanpark8638 2 년 전 +2

    모든 것이 생각의 산물, 나라는 것도 생각, 꿈도 현실도 생각. 인간은 이렇게 생각이 많아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죠. 불교는 나라는 것은 오직 생각임을 깨달고 고통의 근원을 끊는.것입니다.

  • @hwa81
    @hwa81 2 년 전 +6

    종교가 되기전 초기 불교 철학 니까야 등에는 정신분석 측면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유식학파의 말나식 , 야뢰야식 분석도 흥미롭죠.
    초기 석가의 무아 는 생각 포함 모든게 조건에 의해 생겼다 사라지는 연기 작용의 오온작용으로 존재하므로 고정된 형태의 '나' 라고 불릴게 없다는건데,
    몸을 관찰하면 먹는 물과 음식에 의해 성분이 변화되며 태어나 변하고 죽으므로, 퉁쳐서 '나'라고 부르는 이미지는 편의상 사용되는 개념적 허상이라고 받아들여지더군요.
    로고스 , 언어의 분절성, 산업화 이후 빠른 세상 변화의 영향 등으로 인간 단위는 예전보다 더욱 자연상태에서 분절되어 자연 노화 흐름과 개념화된 이미지 존재인 '나'의 중요성이 더 커진듯 합니다.
    라마나 마하르쉬는 깨어있을 때, 잠잘 때, 꿈꿀 때 3가지 의식 상태 경험을 말하며 그 뒤에 모든것을 아우르는 침묵과 같은 의식이 있다고 했죠.
    언어의 한계 때문에 쪼개져 개념화된 인식인 '나' 는 주체이거나 진짜 실체 일 수가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러셀의 의견에 공감이 되네요. 허상에 대한 허구적 토론이죠.

    • @Bak-Do-Min
      @Bak-Do-Min 2 년 전 +2

      🙏🙏🙏🙏🙏🙏🙏🙏🙏

  • @SungHoonChoi4U
    @SungHoonChoi4U 년 전 +1

    좋은 영상 감사드려요

  • @user-wd9nk9dq7q
    @user-wd9nk9dq7q 10 개월 전 +1

    5분 뚝딱 철학 책 두 권 주문했어요.
    유튜브으로 너무 공부가 되어서 내용 전부 보고 싶었어요.
    유튜브 내용 항상 감사드려요.
    많은 사람들이 5분 뚝딱 철학으로 공부가 많이 되길 바래요.
    앞으로도 좋은 영상 많이 만들어주세요^^

  • @googlekorea_
    @googlekorea_ 2 년 전 +8

    너무 좋은데요! 평소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정보의 묶음로만 정의할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콘텐츠가 저의 이런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된것같아요.

  • @busa11jo11
    @busa11jo11 2 년 전 +1

    좋아용~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의 다발일뿐이다.
    욕망 기쁨 존재하는것 같아서 잡으려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나를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순간 번뇌와 고민에 빠지게 된다.

  • @vezitamax
    @vezitamax 2 년 전 +3

    오늘 철학은 동의하기가 좀 어렵군요

  • @talentdoesnotexist.3478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가 컴퓨터프로그램이라는 세상속에서 cpu가 어떤 정보를 처리할때 생기는 전기스파크같은 존재라는건가.
    근데 전기스파크 일어날때의 그 순간에는 어쨋든 '나'라는게 있는거니까 무아든 유아든 그냥 찰나찰나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가면 그만 아닌가 그리고 무아라면 그 전기스파크 일어나는 그 순간에만 내가 존재하게되는거니까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하다 생각되는데.
    무아를 깨달으면 번뇌와 집착이 사라진다는데 오히려 무아를 깨달으니 순간순간이 너무소중해져서 삶에 더욱 집착이. 되는듯? ㅎ

  • @user-uk2lq6rt3i
    @user-uk2lq6rt3i 2 년 전 +3

    존재한다라는 정의에 혼돈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실체를 존재로 본다는 기준과 기호나 정보로 구성된다고 하는 것도 실체라고 보는 관점에 혼돈이 있습니다.
    제로나 없음이 사념에서 기호로 사용되면서 실체로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물리과학에서 해석을 위해 허수를 사용할 수 있게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반물질을 추출할 수 있게 된 것도 실체에대한 우리의 인식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말하고 헛소리가 아닌 결과로 나타나게 되면 인정받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지속성이라는 과제가 있지만 일단은 인정을 받으면서 지속성을 추궁받는데, 이를 극복하면 신앙이 되곤하죠.
    인류의 인식의 형태는 아주 괴물같기 때문에 잘 알고 처신해야 성공을 계속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user-lg2tx6we6b
    @user-lg2tx6we6b 2 년 전 +9

    법륜스님이 산 속에 토끼나 다람쥐를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나네요.
    어떻게 보면 그들보다 인간은 못 한 존재인 것 같아요ㅎ

    • @flame_owl
      @flame_owl 2 년 전 +2

      고통을 받아들이는 측면에서 사자가 사슴을 사냥해서 먹을 때 사자는 그저 사슴을 사냥해 먹었다,로 끝나는데 인간의 사고 방식을 적용하면 사슴을 평생 잡아먹는 나는 살생을 하는 살사자야,라며 고통스러워하기에 고통의 측면에서 화살을 여러번 쏘게 되어 그런 것 아닐까요

  • @kiminseattle3476

    와~~~ 무아에 대해 어렴푸시 알것도 같다가 아닌것도 같았는데 와오~~~ 감사합니다.

  • @UCJqIUBcL-2ZeJ2FsrUwT9Ag

    와........ 네번째 보는 중
    데카르트의 존재론은 망상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들을 과학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였다.

  • @JHS-gu4lw
    @JHS-gu4lw 2 년 전 +5

    어떻게 보면 동물이 인간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무아지경에 이른 생물일지도.....
    그런데 이러면 무아지경이 본능의 충실히 살라는 느낌인데....음....

  • @user-hm9dx3rh6p
    @user-hm9dx3rh6p 2 년 전 +2

    마지막 말은 세네카의 철학도 생각나게 해주셨습니다.

  • @jk-lj3qp
    @jk-lj3qp 2 년 전 +4

    훌륭합니다. ^^
    사과는,
    물/영양분/온도/기압/농부/공기/지구/달/습도/우주/땅/거름 등 수많은 원인들과 조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 이것을 머라고 불러야 될까요?? 사과가 아닌것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사과라고 부를수도 없고, 또한 사과를 이루는 저 무수한 원인들도 조건들도 또다른 원인과 조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색즉시공/실체가없다/사과라고 할만한게 없다/사과 그대로가 공하다/연기법)
    붓다는 , 이렇게 일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일체가 공하니, 나또한 공하다=이것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 @dancingintherain7547
    @dancingintherain7547 2 년 전 +1

    자아가 존재해야 뭐든 이를 기반으로 생각을 시작할수 있으니
    그동안 당연히 받아들여왔었을겁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체가 없다고하면
    양자역학을 처음 대할때처럼 아주 혼란스러울거에요.
    생각이 벽에 부딪힐때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의심해보는 건 당연한 과정입니다.

  • @user-or5et7ty9d

    감사

  • @lionroar
    @lionroar 2 년 전 +2

    “나”라는 것은 수많은 신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방일 뿐입니다.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나쁜 신이 앉아 있을 땐 얼른 쫓아 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좋은 신이 앉아 있을 땐 좀 더 오래 앉아 계시도록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 @user-ow8rm3qj6j
    @user-ow8rm3qj6j 2 년 전 +1

    내가 네 그 마음의고통을 고쳐줄터이니 네 마음이란놈을 꺼내보아라 고통에 지배받고있는위치의나 고통을 꺼내보이기위해 고통보다 위에선나 그리고 고통이란 마음을 분리한나 마음먹기 달렸다 마음에 지배받고있다

  • @user-po7iu3wh1o
    @user-po7iu3wh1o 2 년 전 +4

    불교철학을 연결하여 설명하여 주시어 감사드려요. 일체개공의 논리가 다른 서양철학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연기에 근거한 ‘자타불이’사상이 대승불교의 육바라밀-‘보시’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논리를 제가 잘 연결할 수 없어 문의드려요. (유교사상에서는 그래서 불교는 ‘무’를 강조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일심’을 스피노자(?)적으로 해석하면 ‘자타불이’는 이해되는데요. 달관하는 삶의 근거로 타당하며 적극적 ‘보살행’의 실천 근거로는 부족한 듯하여서요.
    반면 ‘일심’을 맹자적 ‘양심’(직각적 도덕 능력)으로 이해할 때에 적극적인 ‘자비’의 실천이 이해되고요.
    어떤 학자의 입장에 근거하여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을까요?
    각각에 해당하는 불교 이론이 모두 있을 듯한데요… 무엇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의(?)일까요? 부처님이라면 ‘둘 다 맞다’라고하시고 구분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노자도 맞고 공자고 맞고 맹자도 맞고 장자도 맞고… 모두 맞는 말이면서 맞지 않는 말이니(?) 구분하지 말렴~. 이러실까요?

    • @mindisnoting
      @mindisnoting 2 년 전 +1

      자연계에서
      코끼리 사자 쥐 중 어느것이 자연계에 합당한것일까요?
      당신의 사고는 인간의 논리에 갇힌 편견일뿐입니다

    • @flame_owl
      @flame_owl 2 년 전 +1

      모든 것이 나(자타불이)이기에 적극적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 @user-vh9cu6bh2b
      @user-vh9cu6bh2b 2 년 전 +2

      부처님자비를 동체대비라고 하죠
      우리는 원래 일심, 한마음이라고도 합니다
      현재는 분명 너가있고 내가 있어
      다른거 같지만 근본으로 돌아가보면
      본래 하나라는 거죠 그래서 동체대비의
      중생의 아픔을 내가 아픈거처럼
      자비행을 실천해야한다고 합니다

    • @manhau9360
      @manhau9360 2 년 전 +2

      대승불교를 이해하시려면 무상의 개념이 초기불교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 @XellossKor
    @XellossKor 4 개월 전 +1

    깨닫는다고 나를 잊을 순 없는것 같아요 다만 나가 있다고 믿으면서 발생되는 번뇌가 빨리 사라질 뿐입니다^^

  • @user-rg2ob5pq3t
    @user-rg2ob5pq3t 2 년 전 +1

    거의 다람쥐처럼 살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withnotbrain
    @withnotbrain 2 년 전 +1

    나는 생각할수도 있고, 걸을수도 있고, 유튜브를 볼수도 있는데... 그런것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완전히 정지해서 가만히 있는것도 가만히 있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하지 않아야 됩니다....
    결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라는건 없습니다... 말그대로 없는겁니다... 존재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가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보편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yngsklee
    @yngsklee 년 전 +1

    감사합니다. 불교의 무아사상과 삼법인을 불교보다 더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주신 것 같습니다.
    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찰나에 존재하는 물거품과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다.
    내가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순간 인간은 욕구와 집착에 사로잡힌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 @user-mj2fs1sx5r
    @user-mj2fs1sx5r 2 년 전 +1

    12:16 어렵네여;....여태까지 개인의 합리적 , 이성적 판단 이라는 것에 엄청반했는데 그 반대? 의 무언가가

  • @user-et4po2fx4i
    @user-et4po2fx4i 2 년 전 +4

    논리학자의 미신에 관해서, 나는 이러한 미신론자들이 기꺼이 인정하려고 하지 않은 사소하고 간단한 사실을 지치지 않고 매번 반복해서 강조하고자 한다. - 즉 하나의 사상은 '그 사상'이 원할 때 오는 것이지 '내'가 원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 '나'는 술어 '생각한다'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그 무엇이 생각한다.(Es denkt) 그러나 이러한 '그 무엇'이 바로 저 오래되고 유명한 '나'라고 한다면, 부드럽게 말한다고 해도, 단지 하나의 가정일 뿐이고, 주장일 뿐, 특히 '직접적인 확실성'은 아닌 것이다. 결국 이미 이러한 "그 무엇이 생각한다"는 것으로 너무나 충분하다 : 이미 이러한 '그 무엇'에는 사유 과정에 개한 하나의 해석이 함축되어 있으며, 그 과정 자체에 속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문법적인 습관에 따라 "사고라는 것은 하나의 활동이며, 모든 활동에는 활동하는 하나의 주체가 있다. 그러므로 -"라고 추론한다. 대략 이와 같은 방식에 따라 옛 원자론은 작용하는 힘에 대해, 그 안에 힘이 존재하고 그로부터 힘이 작용해 나오는 저 물질 덩어리, 즉 원자를 찾았다. 엄격한 두뇌의 소유자는 결국 이러한 '지상의 잔여물' 없이도 꾸려나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아마 어느 날 사람들은 또한 논리학자들의 입장에서 저 작은 '그 무엇' (존경할 만한 오래된 나(자아)는 그 무엇으로 도피했던 것이다.) 없이 꾸려나가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 @wook8361
    @wook8361 2 년 전 +1

    이 영상이 저와 연관되었다는 생각을 하는것만으로도 무언가 저를 잠식하는듯한 느낌이고 마음한쪽 구석이 아프며
    제가 얼굴에 변화가 오는듯한 느낌입니다. 더는 영상에 주인공이 되고싶지 않습니다.
    더 하고 싶은말도 있고 해야하는 말도 있지만 그냥 과거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 @broadykim2312
    @broadykim2312 년 전 +1

    만약에 나라는 존재가 찰라적인 감각과 감정의 다발이거나 아지랑이 라면 기억과 트라우마가 계속 남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뭘까요 ? 그리고 그렇다면 나와 타인의 개체가 구별 가능 할까요? 아님 아예 구별 이 없는 건가요? 실재에선 끊임없이 차이를 경험하고 식하게 되는데요 흥미로운 얘기라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듭니다

    • @aigoiaoidoi2215
      @aigoiaoidoi2215 년 전

      아마도 과거에 나와 지금에 내가 같다고 생각하는 것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속성은 있을지 몰라도 같진 않죠.

  • @user-kb1vs8xn7u
    @user-kb1vs8xn7u 2 년 전 +3

    저번 영상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듣고나니 러셀의 주장은 뭔가 말장난처럼 느껴지네요

  • @user-rz3dr5uv9u
    @user-rz3dr5uv9u 2 년 전 +2

    러셀의 기술 이론은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씀과 일맥 상통하는 것인가요?

  • @user-uc6nj1pq6d
    @user-uc6nj1pq6d 년 전 +1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 한다.고로 존재 한다.’ 라는 말도 무아사상의 측면에서 보면 틀린 말이다
    ‘나’라는 것 자체가 진정한 ‘참 나’가 아닌것이고 그것이 하는 생각 즉 ‘허상의 생각’은 존재 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 라고 인식하는 허상을 관찰하는 관찰자 적 ‘참 나’만 있을 뿐
    말 장난 같기도 하지만
    나무는 아무런 생각이 없지만 존재한다.
    즉, 모든것은 허상이라는 뜻이다

  • @user-uh7jp1rb5w
    @user-uh7jp1rb5w 2 년 전 +14

    상당히 수준 높은 내용입니다. 무아라는 생각조차 없는 그 자리, 생각이 없다라는 생각조차 없는 그자리가 바로 원래의 자리 "무아" 입니다. 내가 없으면 하나가되고, 만상이 하나임을 알게됩니다.

    • @user-vw4xs2xp9v
      @user-vw4xs2xp9v 2 년 전 +1

      만상을 알았음 이곳 어디에있든 알게되는거임 나는 없음 무아에서는 나라는게없음 실체가없음 근데 미래를 봄 어느곳에있든 어느 세계에 있든 그쪽 세계든 이쪽 세계든 우주를보든 다른 세상을 보든 근데 그곳이 어디에있는지 모르는거임 ㅋㅋㅋㅋ 실체는 이곳일수도 아님 다른세계일수도
      찾으면 있을거임 ㅋㅋㅋㅋㅋㅋ 가짜는 아님 기억된 환영은 아니니깐

    • @woj528ify
      @woj528ify 2 년 전 +1

      무아의 경지 최종형태는 기계임. 인간도 결국 일종의기계임

  • @MT-yq7io
    @MT-yq7io 9 개월 전 +1

    내가 내가 아니라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시인되는 거네요… 모든 철학들이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것 같네요…

  • @ascendo_lee
    @ascendo_lee 2 년 전 +1

    램쥐썬더로 깨달음을 얻읍시다...람쥐

  • @user-lx7cw7wj5n
    @user-lx7cw7wj5n 2 년 전 +2

    니체의 낙타 사자 아이와도 같은 과정을 겪는다 햇는데.
    아이의 상태가 모든걸 받아들인다? 라고 알고 있는데
    무아 사상이나 다발 이론과 같은 맥락인가요??

  • @user-oe7jq7gz5v
    @user-oe7jq7gz5v 2 년 전 +1

    효과음때문에 우리집 강아지들 뒤집어짐. 띵~~~ 이런 소리에 공포감을 느끼는거 같아요. 이것을 5분철학으로 설명 할 수 있을까요? ㅋㅋㅋ

  • @user-ed9mp3do5h
    @user-ed9mp3do5h 년 전 +1

    내용 좋습니다
    우주는 흘러감만이 있을 뿐 이지요
    나라고 인식하는 순간 , 이미 나는
    사라지고 없죠
    고정된 실체로써 나가 없는 것이죠
    일주일만 지나면 60조 개가 넘는 몸의 세포가 다 바뀌어 버린다고 하더군요
    만약 인간이 고도의 현미경 같은 눈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아마 전쟁은 사라지겠죠
    다 욕망,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이니까요
    영상 잘 보고 갑니다 💖👍

  • @user-nl3ie5cx4j
    @user-nl3ie5cx4j 년 전 +1

    나라고 생각한 육체나 정신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다른 대상들과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연기법에 의해 인과관계를 갖는 하나의 객체일뿐입니다. 결국 세상에 일어나는 것들은 철저한 인과로 일어나니 나(생각의 착각 다발)라는 생각이 끼어들틈이 없습니다.

  • @user-rd9hl1py9e
    @user-rd9hl1py9e 2 년 전 +1

    논리학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나요? ㅎㅎㅎ

  • @woonie851
    @woonie851 2 년 전 +2

    인생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

  • @hollyp1429
    @hollyp1429 2 년 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초기 구독자입니다 혹시 5분 뚝딱 철학 2권 또한 ebook으로 나올 예정인가요??

  • @user-vz9dp1dc6k
    @user-vz9dp1dc6k 2 년 전 +4

    다람쥐가 무아의 경지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인식론의 문제에 봉착할 것 같은데..
    내가 알지 못하는 대상을 두고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 역시 '나'의 과잉은 아닐지.
    '실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 오히려 모순적으로 보이는데.. 자신들의 주장의 일관성 자체가 오히려 데카르트의 존재론을 증명하는 건 아닌지.
    나는 그 존재를 생각하는 것 만으로 1이라 보는 관점, 그건 찰라이기 때문에 0이라고 보는 관점 모두 문제있다고 보는데.. 존재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런 논의가 존재에 대한 핵심을 벗어난 것 같기도 하고..
    이들의 주장이 생각의 재료가 되지만 답은 되지 못하는 듯.

  • @user-vf9ej6do5j
    @user-vf9ej6do5j 4 개월 전 +1

    과거미래는 없다는것을 누구나 알죠.
    (현재)
    의심하고있구나
    걷고 있구나
    앉는구나
    눕는다.
    눈을 깜박거린다.
    호흡한다.
    현재는 어디일까요?
    현재는 과연 있는걸까요?
    나는 무엇일까요?
    나는 이거다...하는순간(반짝지나는순간)
    이것은 나가 아닙니다.
    반짝~
    이것이 나일까요?ㅎ
    나라고 할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했다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실제는
    내가 없는데ㅡ"내가했다"는 생각이 강할 수록
    인식의 오류가 심각한것이라서 정신병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내가 했어도 겸손한 마음을 가질때,
    실제에 가깝기 때문에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 @bushcooni
    @bushcooni 2 년 전 +3

    사과는 빨강, 구체, 시큼 등의 특징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특징을 모아놓은 것이 꼭 사과라고 할 수는 없다.
    사과의, 사과로만 귀결되는 설명은 없으므로 사과라는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175cm 에 73kg 대한민국 남성 어쩌구 저쩌구.. 이러한 설명도 끝없이 겉돌 뿐이다. 어라? 이거 어디서 봤는데

  • @user-iq1ez5sf2k
    @user-iq1ez5sf2k 2 년 전 +1

    재밌다고 느낀 것은 착각이었습니다.

  • @user-io4dc5le9d
    @user-io4dc5le9d 11 개월 전 +1

    강의 정말 좋습니다. 다른 강의들도 탁월하지만 특히 이번 강의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불교의 정수에 대해 이렇게 쉽고 좋은 예를 들어 설명한 글이나 영상은 처음입니다.
    강의를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멋집니다.

  • @user-li1bu5pc8j
    @user-li1bu5pc8j 2 년 전 +3

    마지막에 궁금한게요...
    다람쥐가 심심한지 괴로운지 아닌지 그 스님은 어떻게 알고 있으신지??
    다람쥐한테 물어보기라도 하셨는가봐요?

  • @Buddyischingu
    @Buddyischingu 년 전

    2:20에 나오는 음악이 뭔지 알려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신가요?

  • @meinlet5103
    @meinlet5103 2 년 전 +2

    데카르트도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동안만큼은 존재한다 라고 주장한다고 배웠었는데 아닌가요?

    • @talentdoesnotexist.3478
      @talentdoesnotexist.3478 2 년 전 +1

      맞습니다. 사유를 멈추는 동안 나라는 존재도 멈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는 멈추는것일뿐 '나'라는 고정불변의 실체를 상정했다는 점이죠. 이미' 나는 생각한다'에서 '나'는 본질적인 실체로서 시작한다는점이죠. 그도 그럴것이 '나'라는 틀이 있어야 생각이 가능하다는건 어떻게보면 지극히 당연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신이원론으로 넘어가 영혼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무아사상은 모든것은 무상하므로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즉 '나'라는 틀이 있어야 생각은 가능하긴 한데 그때의 '나'는 변하지않는 항상하는 본질적인 내가 아니라 마치 전기스파크처럼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연기같은거라 결국 변하게되어 다른'나'가 된다는겁니다. 따라서 영혼같이 본질로서의 나같은건 없다고 부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불교는 윤회를 인정하는데 그럼 윤회하는 주체는 누구냐 라는것이죠.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이 다른몸을 빌려태어난다고 설명하면 간단하지만, 영혼같은건 없고 '나'라는 실체가 없는데 도대체 오늘날 내가 지은 업으로 미래생에 그 과보를 받을 주체는 누구냐라는 의문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후에 유식의 아뢰야식처럼 모든정보를 저장하는 식이 있어서 그 식이 마치 씨앗이 식물의 유전자를 가지고 땅에 심어져 꽃을 피우듯이 과거의 업력(정보)을 가지고 윤회한다고 합니다.
      안다고 생각하고 얘기했는데 워낙 제대로 설명하는 분들도 찾기힘들고 철학이란게 더 깊게들어가면 너무 심오해져서 수박겉핥기식이라 정확하지않을 수있습니다.

    • @user-di5nb3hp2x
      @user-di5nb3hp2x 2 년 전 +1

      @@talentdoesnotexist.3478 제가 들은 바로는 원래 불교에서는 윤회같은 사상을 말한게 아니라 불교의 태생지가 인도라 인도의 종교인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원래 다른 나라로 전파되면 그 나라의 토속 신앙과 융화 되잖아요.
      중국으로 와서는 도교와 융화해서 그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과거 서구쪽으로 넘어간 불교의 불상을 보니 서양 사람의 부처상이더군요.
      정말 불교에서 말하는 본질은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는 거죠.
      좀더 진짜 불교의 핵심, 본질에 다가가 보는건 어떨까요?
      윤회니 극락이니 지옥이니..이런말은 어떤 종교로서의 또는 기복신앙으로서의 불교라는 한정적인 이미지가 되는것 같은데
      제가보기에 불교는 종교이전에 더 근본적인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 @talentdoesnotexist.3478
      @talentdoesnotexist.3478 2 년 전

      @@user-di5nb3hp2x 맞습니다 저도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초기불경에서도 싯달타가 윤회에 관하여 본인이 어떻게 붓다가되었는지 그 한량없는 공덕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초기근본불경에서도 육신통에 대해 설명하는데 숙명통이라든지 천안통은 모두 전생을 궤뚫는 신통력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핵심인 연기법은 그 자체가 까르마, 업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천왕이라든지 제석천이라든지 그런 이계의 존재들 중 상당수가 힌두교로부터 영향을 받은거지 윤회하는것 자체를 불교가 부정하지는 않은걸로 알고있습니다.

    • @user-di5nb3hp2x
      @user-di5nb3hp2x 2 년 전 +1

      @@talentdoesnotexist.3478 많이 아시네요.
      전 이분야 전공도 아니고 과학 특히 양자역학에 관심을 갖다보니 불교에 대해 관심을 자연히 가지게 된 경우입니다.
      따라서 제가 별로 아는것도 없고해서 위에 주장은 법륜스님의 법문중에 나온 말씀을 그대로 인용 한것입니다.
      또한가지 인용을 해보자면 불교는 크게 3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1, 기복신앙으로서의 불교.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보는 불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절에가서 자신의 복을 비는 형태의 신앙 같은 거겠죠.
      2, 학문의로서의 불교. 학자나 교수처럼 불경을 연구하고 학문적인 성취를 하는 불교로서 제가 아마 이 부분인것 같습니다.
      3, 수행을 함으로서 세상의 본질에 이르려고 하는 행위로서의 불교

      법륜스님께서는 불교의 본질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3번이 가장 좋다고 말씀 하셨는데 2번도 안될것은 없지만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는것이 많은 경우 깨닫는 본질에 다다르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하더군요.
      언어로 설명하려면 일단 상을 자꾸 지어야 하는데 불교의 본래 목적인 상을 지우는 훈련을 해야하는 것에 위배가 되는 이유죠.
      아마도 싯달다께서 그리 말씀하셨을땐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언어라는 방편으로 설명하는것으로 해석이 될수도 있을것 같고,
      깨닫기 전엔 스스로 만들어 놓은 상에 갇혔기때문에 깨닿기 이전의 상황에서 그런 여러 상황[환생, 극락, 지옥 같은]을 경험 할수도 있다고 보여지네요.
      그러니까 깨달음 이후엔 정말 본질적인[가짜가 아닌 진실의 세계] 공으로 간것이 아닐까요.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제 생각인데요.
      요즘 삶,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육체를 가지고 숨을 쉰다는게 사실 죽음이 아닐까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갈등에 근원이 생로병사인데 육체가 없다면 그런 생로병사가 사라지면서 극한의 자유로 나아갈텐데 육체를 받음으로서 제한이 엄청 많아지고 말씀하신 윤회를 함으로써 이러한 괴로움을 반복하게되는데..
      만일 어느순간 제가 어떤 상을 짖지않고 언어가 만들어논 그 이전의 세상으로 간다면 그건 모든것을 초월한 세계 그러니까 분별도 없으므로 삶과 죽음도 없는거겠죠.
      요즘은 대략 이것이 어떤것일지 아주 살짝 느껴지는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이 수련이라는게 뭘배우는게 아니라 뭘배우기 이전으로 점점 돌아가는 훈련을 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갓난아기같은 의식상태라고 보는데..
      우리가 태어나서 배우는게 결국 계속 이런저런 상을 짖고 카테고리를 나누고 하면서 점점 본질에서 멀어지게 하는걸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훈련이라고 봅니다.

    • @talentdoesnotexist.3478
      @talentdoesnotexist.3478 2 년 전

      @@user-di5nb3hp2x 상당히 통찰력있으신 분을 만나 기쁩니다. 굉장히본질에 가까운말씀을하셔서 놀랍습니다.저또한 늘 죽음 그러니까 지금 우리삶의 경계를 벗어나 결국엔 나는 어떻게될것이며 그 상태가 우리의 본질을 결정하는게 아닌가 나아가 우리란 무엇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식이란 무엇인가 와 같은 존재론적형이상학따위에 늘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전공자는 아니지만 저또한 불교에 상당한관심을 가지고있고 양자역학도마찬가지입니다. 말씀하신 언어 이전의 분별없는 순수한 의식상태가 있을것이라고 직관을 합니다만(흔히 깨달음이라던지 돈오점수라던지 하는것도 언어로 표현할수없기에 간화선같은걸 중요시여기는 선불교도 있죠) 아마도 제생각엔 그런 언어로 표현하기힘든 의식상태는 말씀하신대로 수련없이는 이해하기 힘들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를 통해 개념화하고받아들이기에 말씀하신 본질에 대해서 그 핵심은 건들지못하더라도 그 주변부는 언어의묘사로서 추측과 우리가 가지고있는 직관과 통찰로서 짐작해보는게 최선일겁니다. 싯달타조차도 본인의 깨달음을 어떻게 표현할수있을까그게어렵고 대중들이 이해조차못할까봐 그냥혼자깨닫고 살다가 그렇게 갈려고했다네요ㅋㅋ
      암튼 저희조차 언어를 통하지않고는 소통이 불가하기에 언어의 논리가 아니고서는 대화가불가하기에.. 최대한 묘사해서 제생각을 표현하자면 님이 말한 수준은 차원이다른 의식상태인것같습니다. 언어로 저술된 경전에서의 묘사를 굳이 살펴보면 천상 욕계 도리천 그 이상의 세계에서는 서로바라보기만해도 합일이되는..물질이있지만 순수한의식이 머무는세계들이 있고 그이상의 무색계의 세계에서는 순수한의식만 그저 미세한상태로 존재하게되는등 실제로 불교에서는 그런 세계를 상정하고 체계화합니다(당연히 그런세계에는 언어따위존재하지도 않고 필요치도 않습니다) 혹자는 그런세계가 실제로 있는것이아니라 우리가 삼매에 빠지게되는 고차원의 정신상태를 단계마다묘사한거다라고 얘기는 합니다만..그 진위여부는모를겁니다. 다만 우리가 경전에서 묘사된 정말 말도 안되는 그런세계를 상상해봄으로서 어느정도는 깨달음에관한 인사이트를 얻게 되는건 있습니다.무색계에 대한 묘사만 살펴보더라도 우리가 현재살고 있는 존재의 양태와 전혀 차원이 다른 존재양태를 띠고 있는데, 그 차이의 간격은 엄청나죠. 지금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의 양태에 대한 선입견(물질이있고 걸어다니고 인식하고 사고하는 존재들)과 틀이 완전히 깨지게되면서 도대체 그럼 우린 누구인가 우린 원래 미세한 의식일수도 있지않을까.(실제로 불교에서는인류의 기원을 그렇게 설명합니다..설명하자면 긴데.. 우주또한 생멸을거듭하는 시스템인데 높은차원의 존재들이 하나둘 그 업이다해 점점 낮은차원의 물질세계로 유입이된다는 그런스토리인데..정작 제가본초기불교에관한 책에선 싯달타본인은 우주의기원과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순수한정신상태도 무상하다며 비상비비상처라는 최고의 정신수준마저 극복한깨달음을 가진자가 아라한이된다고합니다.. 그럼도대체 싯달타는 무엇을 말하려했는가.. 말씀하신대로 태어나는것자체가 괴로움이라고 상정하고 아라한이되면 더이상 태어나지 않게된다고도하는데, 그러면 열반에드는것이 존재가 사라지는것을 의미하는건가 아니면 이 우주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통합되는것을 의미하는건가..여러가지 의문이들지만 역시 그런 비논리적인 초월적인차원의 일은 현재의 사고체계의논리로서 다가가면전혀 볼수없겠지요 굳이 표현하자면 2차원의 세상이 3차원을 봐도 볼수없거나 2차원으로 재해석하듯이 우리의 현재 의식체계로는 다른차원의 의식체계를 볼수도 이해하기도 힘들겁니다 묘사될수없는걸 묘사할려니 참 어렵네요. 주저리썼지만 결론은.. 말씀하신 언어이전의 무분별의 순수한 의식상태가 있을것이라 저도 동감하며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는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근접한 의식상태일것입니다 왜냐하면 각종 경전에서의 설명들을 통해 무분별의 순수하고 미세한 의식만이 희미하게 존재하는 세계 따위를 상정해보면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있는 직관과 통찰을 통해 그런 세계를 바라본다면 님이말씀하신 그런 무분별의 순수의식상태의 흔적은 분명히 있다는것을 감지할수는 있으니까요

  • @user-mj2fs1sx5r
    @user-mj2fs1sx5r 2 년 전

    마지막에 영상링크안되어있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