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돈의 힘! 알렉산더 대왕이 전쟁을 벌인 이유, 돈 때문에 망한 로마! | 안계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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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일 2024. 03. 28.
  • 00:00 세계사를 바꾼 돈 저자 안계환 저자 (촬영일 1월 6일)
    01:04 전쟁의 결과물들을 보면 돈 때문에 움직였다는 것이 눈에 보이게 된다.
    02:00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은광 개발로 얻은 자금으로 좋은 무기, 갑옷, 창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04:14 파르테논 신전-아테네 중심으로 한 300여개의 도시 국가가 방위를 위해 델로스 동맹이 맺었다. 여기서 얻은 공동기금으로 지은 신전이 파르테논 신전.
    05:45 시간이 흐르면서 적국의 위험이 적어지면서 동맥 국가들이 공동기금을 아테네가 사용하는 것에 저항하자 아테네는 반항한 국가를 말살시켰다.
    08:09 또 다른 동맹 국가가 아테네에게 동맹에서 나가겠다고 했을 때 공격에 대비해 스파르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벌어진 전쟁이 ‘펠로폰네소스 전쟁’
    08:37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VS 아테네 중심의 델로스 동맹의 싸움. 시칠리아 공격 이후로 아테네가 몰락하게 된다.
    09:31 아테네의 지도자 알키비아데스 시라쿠사는 부유한 도시로 약탈물이 많다고 선동하여 시민 5만 명을 끌고 갔으나 결국 몰살되었다.
    10:41 고대 경제를 뒷받침하는 주축 중 하나가 노예였다.
    10:58 로마 시민들은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노예들을 시켰다. 그리고 어느 정도 되면 장사를 잘하는 노예들은 해방시켜 주었다.
    11:19 그리스에서 잡아 온 배운 사람들을 교사로 임용했다. 이들도 시간이 지나 해방시켜 주었지만, 모두를 해방 시켜준 건 아니다.
    12:47 유럽 역사의 대왕 “알렉산더”, 그가 전쟁을 나가야 했던 이유는 그리스 지역에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3:37 당시 그리스의 청년 실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돈이 많은 나라로 가서 전쟁을 벌였다.
    15:21 로마에 가면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인 콜로세움을 보통 황제가 국가자금으로 지었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16:23 기사 계급의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되면서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세웠다.
    17:19 출신 신분이 높으면 자연스레 우러러보지만 출신 신분이 낮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시민들의 존경을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눈에 보이는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다.
    18:43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원이기도 하다. 권력을 얻기 위해 시민들에게 부를 사용하였다
    19:18 서양에는 절대 권력자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부를 시민에게 시사함으로 시민들의 지지을 얻으면 하나의 권력이 생기게 된다.
    20:08 세금은 로마 시대부터 항상 있었다. 인두세라고 자신의 수익의 10%를 내야 했다.
    21:18 세리는 로마의 관리가 아니라 세금 징수 회사이다. 로마가 세금 징수하는 회사에 하청을 주어 해당 지역의 세금을 걷고 수수료을 제외한 나머지를 상납하게 하였다.
    22:12 콜로세움은 유대 전쟁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있는 제물과 유대인 10만 명의 포로를 끌고 왔다. 그중 5만 명을 콜로세움 건축에 투입하였다.
    23:19 은화를 발행하면 액면가와 실제 가치가 같아야 하는데 다를 경우 문제가 생긴다. 후반에는 은광이 개발이 안 되었다.
    23:45 후반기에는 전쟁 할 능력도 없었다. 약탈물과 은이 없고 세금도 적었다. 그러면서 나라 실정이 어려워졌다.
    24:03 동로마는 서로마 멸망 후 1000년 더 존속했다. 단지 돈을 많이 찍어서 로마가 멸망했다면 동로마 역시 같이 멸망을 했어야 할 것이다.
    24:34 동로마가 더 오래 존속했던 이유는 서로마와 동로마의 경제력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24:57 당시 서로마는 비난한 지역이고 동로마는 부자 지역이었다. 지금의 로마시도 식량 자급이 안 되어 시칠리아와 이집트에서 수입해야 한다.
    25:46 흔히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하지만 동로마도 공격을 받았다. 동로마는 경제력이 있어 막을 수 있었지만, 서로마는 경제력이 없어 막아내지 못했다.
    26:47 서로마가 멸망된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력 때문이다.
    편집 :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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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

  • @Golden_halla
    @Golden_halla 3 년 전 +3

    역사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네요

  • @user-kk2ex4em6u
    @user-kk2ex4em6u 3 년 전 +3

    감사합니다

  • @soldier_ant_trader
    @soldier_ant_trader 3 년 전 +3

    오늘도 즐거운 하루 였습니다
    이번주도 모두 즐겁고 행복한 한주 되세요

  • @user-qz4ee9re3n
    @user-qz4ee9re3n 3 년 전 +2

    이번 내용 정말 흥미롭네요. 책 사서 읽어봐야겠어요.

  • @bayonjung9886
    @bayonjung9886 3 년 전

    👍👍👍

  • @user-jy1iq8do7d
    @user-jy1iq8do7d 5 개월 전

    안 계환 저자님의 식견이 역사학자보다 나은갓 같습니다 아테네멸망등로마의멸망등이 정말 더 살득력있게 다가오네요 기존에 갖고 있던 나의 생각이 바뀌지는갓 같습니다..훌륭합나다 착 꼭 구매해서 봐야겠네요..

  • @user-tx4jx7zk3c
    @user-tx4jx7zk3c 3 년 전 +1

    과거 역사를 볼때 흔히 범하는 오류중의 하나가 과거를 현재와 같은 잣대로 평가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제일 대표적인게 조세제도지요. 고대사에서 세율이 몇퍼센트 하는게 아무 의미도 없어요. 세율의 대상이 되는 과세표준을 측정하기도 어려운데 세율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우리나라도 50년대까지 술에 매기는 주세를 걷으려고 세무서 직원들이 양조장에 숨어서 출하되는 술통 숫자를 세고는 했어요. 그걸 근거로 양조장 주인들과 협상해서 과세표준을 정하곤 했습니다. 현대와 같은 정교한 세무 시스템이 완성된 것은 컴퓨터가 도입된 20세기 후반에나 입니다. 서구 선진국들도 19세기말에나 와서야 근대적인 세무 시스템이 수립됩니다.
    로마제국의 징수제도는 세금징수 대리인들에게 세금 징수권을 경매로 파는 시스템이었어요. 예를 들어 유대 지방에 할당된 속주세가 1억이면 각종 인두세 통행세 징수권을 각 지역에 팔아서 10억 정도 거둔후 1억을 본국 로마에 내고 나머지로 현지 주둔 로마군 유지비 등등 쓰고 나머지는 총독등등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시스템이었어요. 카에사르가 스페인 총독 3년인가 하고서 그때 번돈으로 엄청난 빚갚고 남은돈으로 로마에서 거창한 축제를 거행한 것은 유명하죠.
    그럼 세금징수 대리인들은 실제로 얼마를 걷었을까요. 역사가들은 최소 3 ~5배를 걷었을거라고 봐요. 왜냐하면 징수권을 낙찰받으면 선금으로 로마 총독부에 납부해야 하는데 각종 비용과 리스크를 감안하면 그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변란이라도 나서 세금을 못걷으면 세금 대리인은 망하는 거지요. 속주민들이 실제 납부하는 조세는 속주세의 수십배였을거라는게 정설입니다. 이런걸 무시하고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의 속주세가 관대했느니 한거죠.
    로마제국 말기가 되면 게르만 족과 전쟁 때문에 각 속주에 부과되는 속주세가 급증하게 됩니다. 로마 징수 담당관들은 세금징수 대리인들에게 새로운 세목을 개발할 것을 주문하고 이들은 사업적인 관점에서 별의 별 세금을 만들어 냅니다. 새로이 이 이윤이 많이 남는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되서 세금을 내는 사람들 보다 세금 징수 대리인이 더 많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오게 되지요.
    각설하고 로마 황제는 자신이 총독을 임명할수 있는 '황제의 속주' 총독들과 황제의 개인 소유지인 이집트 총독으로 부터 공식적인 속주세 이외에 상납을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로마에 큰 건축물을 지었구요. 지금 남아 있는 황제가 지었다는 로마의 건축물들은 대개 그런돈들로 지은 겁니다. 한가지 더, 베스파시아누스가 잡아 왔다는 유대 포로들은 거의 대부분 몸값을 받고 풀어 줬습니다. 당시 유대는 부유한 편에 속했고 말도 안통하는 유대인들을 데려다 어떻게 그런 어머어마한 건축물을 짓나요. 뭐 이런것도 로마가 잘나갈때 얘기고 콘스탄티누스 이후에는 그런건 꿈도 꾸지 못하게 되요.

    • @avonjohn3393
      @avonjohn3393 3 년 전

      재미있는 댓글입니다. 세금 제도 문제 이외에도 황제가 금화에 불순물을 썪어서 통화로 유통시키는 화폐 훼손이 로마 멸망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로는 베시피아누스가 부족한 건축비를 조달하가 위하여 공공 화장실에 요금을 부과했을 때, 그의 아들인 티투스(베시피아누스를 이은 황제)가 부당함을 호소하자, "돈은 냄새를 모른다"(Pecunia non olet: Money has no smell.)라고 대꾸했다죠.

  • @user-tx4jx7zk3c
    @user-tx4jx7zk3c 3 년 전 +4

    동로마제국이 버틸수 있었던 것은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의 경고한 방어력 덕분이었습니다. 다뉴브강을 건넌 게르만족이 풍요로운 지역인 시리아 이집트로 가려고 했지만 견고한 성벽과 바다로 둘러쌓인 콘스탄티노플을 돌파하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서로마로 갈수밖에 없었어요. 동로마는 당시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지역인 시리아 이집트 터키를 천혜의 요새지인 콘스탄티노플 덕분에 보호할수 있었기에 버틸수 있었던 겁니다.
    반면 서로마제국의 경제적인 기반은 카르타고 (지금의 튀니지)와 시실리였습니다. 게르만 족이 노리던 지역도 카르타고 였어요. 문제는 카르타고까지 가는 루트가 여러개였고 콘스탄티노플같은 천혜의 요새가 없어서 방어가 쉽지 않았다는겁니다. 거기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가 모두 카르타고까지 가는 중간에 있어서 일단 라인강 방어선과 도나우강 방어선이 뚫리자 서로마의 모든 영토는 카르타고로 가려는 게르만족의 침략을 피할수 없었어요. 게르만 족의 일족인 반달족이 프랑스 스페인 모로코를 거쳐 카르타고를 점령하자 서로마제국은 더 이상 버틸 힘을 잃고 멸망한 것이지요.
    동로마제국의 경제력도 지정학적인 유리한 점이 있어서 지켜낼수 있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