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광주 법정에 세운 조비오 신부와의 대화!! 5.18 민주화운동 특집 [대화] (KBS 20060518 방송)

공유
소스 코드
  • 게시일 2022. 05. 17.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특집 '대화'
    ▶구 전남 도청 앞 광장, 5.18 광주를 증언해줄 수 있는 인물로, 당시 광주 계림동 성당 신부로 있었으며 시민 수습 대책위원회 활동을 했던 조비오 신부와 전북 출신의 시인 김용택의 5.18을 주제로 한 대화.
    전쟁과는 또다른 대한민국의 깊은 상처인 5.18에서 우리가 찾고 배워야 하는 빛나는 정신과 실천에 대해 상기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상처 극복의 과정으로 의미를 가진다.
    양극화 문제, 남북 문제 등 오늘 날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 문제들을, 극단 상황에서도 나눔과 이타의 실천을 보여주었던 5.18 민주화 운동 정신에서 찾아보고자 함으로써, 민주화의 거름으로 5.18을 자리매김해 가는 역할을 한다.
    #조비오 #5.18 민주화운동 #전두환
  • 엔터테인먼트

댓글 • 57

  • @user-cv1fw2hp5s
    @user-cv1fw2hp5s 9 개월 전 +2

    그 많은 사람중에 왜 신부한 사람뿐인가

  • @chongso1765
    @chongso1765 년 전 +2

    그날 21-23일 광주에서 떠오른 헬기는 광주비행대에서 전남북계엄사로 배속시킨 코브라 전투용 헬기다
    코브라 헬기는 적의 장갑차량이나 탱크를 공격하는 헬기인데 최소무장이 발칸포다.
    흔히 베트남전 영화에서 보듯 기관총을 바깥으로 거치하고 쏘는 그런 종류의 헬기가 아니다.
    코브라 헬기 4대가 계엄사로 배속되었는데 기장들은 소령 부기장들은 대위였다.
    헬기 조종사 전원이 기총사격은 물론 그 비슷한 일도 없었노라 증언했고 시가지 상공에서 시위대를 공격하라는 정식 작전명령을 받은적도 없었다고 하며 비행대 정비병 100여명도 헬기를 무장시킨 기억이나 명령을 받은적이 없었노라 증언을 한 바 있다.
    저 조비오라는 사람은 성직자이지만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 거짓말의 동기가 잘못 보았던지 혹은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정치적 이유에서인지는 알수가 없다.
    일설엔 조비오 신부가 헬기 기총사격을 확실히 목격한게 맞냐는 동료의 질문에
    광주시민들이 자신이 그렇게 증언해주기를 바란다고 했었다고 한다.
    저 증언을 듣고 있자니
    슬프고 동시에 환멸이 느껴진다

  • @user-zx3qy4kf6l
    @user-zx3qy4kf6l 년 전 +1

    헬기에 거치대를 해줘야 기관총을 쏘지......
    법정 내용을 공개합시다

  • @user-zx3qy4kf6l

    연고대생 600명 학생대표는 누구?

  • @3000Sync
    @3000Sync 년 전 +5

    "1960년 4월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뒤로 마산에서는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마산경찰서 무기고에서 수류탄 4개가 탈취되고, 경찰서장실 앞뜰에 수류탄이 투척이 되어 마산경찰서가 파괴되고, 경찰 11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결국 마산 지역 시위는 총격전 양상까지 발전했습니다. 마산 시위는 폭동과 총격전 양상으로까지 발전, 사망 8명, 부상 72명, 검거된 인원만도 253명에 달했다. 1960년 4월19일 서울에서는 경찰이 경무대에 몰려든 시위대에 발포를 했으며, 오후 2시 경찰이 경찰서 무기고에 육박하던 시위대에 대해 발포를 가해 시위대 8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때부터 시위대는 경찰로부터 무기를 빼았기 시작하여 19일 오후 4시 동대문 경찰서에서 최초의 총격전이 일어났고, 을지로 6가 서울운동장 앞에서도 총격전이 있었습니다. 시위대는 동대문에서 청량리에 이르는 파출소를 대부분 불태우면서 경찰서 무기고에서 카빈을 탈취했습니다. 무장한 시위대는 의정부 무기고로 이동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지만 자정무렵 계엄군이 출동하자 고려대 뒷산으로 후퇴했습니다. 고려대 부근에서는 20일 새벽까지 경찰과 시위대 간의 총격전이 계속됐습니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나서도 시위는 진정되지 않아, 26일 오후 7시 인천에서는 파출소가 파괴되고 시위대가 무기고에 칩입했으며, 27일 새벽 경북 김천에서 군중이 경찰서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했습니다."
    "북한은 4·19 혁명(남조선 인민 봉기), 부마항쟁(10월 민주 항쟁), 5·18 민주화 운동, 6·3 항쟁(남조선 청년 학생 봉기), 6월항쟁(6월 인민 항쟁) 등 남한의 주요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고, 사건이 발발한 날을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동학혁명, 프랑스혁명, 4.19혁명도 명백한 무장폭동이죠? 왜 혁명입니까? 아, 4.19는 특정지역 교주때 제정·공포해서?

  • @user-jw7vh4pg8e
    @user-jw7vh4pg8e 년 전 +6

    조비오는극락으로

    • @3000Sync
      @3000Sync 년 전 +1

      묵씨는?

    • @chongso1765
      @chongso1765 년 전

      @정원 오 거짓말의 화신이며 그가 조국이다.

  • @user-nf1lu6mt6v
    @user-nf1lu6mt6v 년 전 +4

    김밥이나.음료수를
    제공했다고하나
    군사정부에서보면
    그것먹고열심히
    시위하라고부추킨꼴!

    • @3000Sync
      @3000Sync 년 전 +1

      지금도 여기서 댓글 알바하시네? 기초수급대상 탈락했어도 라면만 먹지 마시고~~

    • @user-yc2hg4pq4s
      @user-yc2hg4pq4s 년 전 +1

      광주민중항쟁에 일어난 또 다른 특징은 질서와 화해, 그리고 수준 높은 민주의식과 참여의식이 유감없이 발현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초기에 공수부대원들의 만행을 보고 격분한 나머지 거리로 뛰쳐나와 민중으로 돌변한 시민들이지만 질서의식은 대단했다. 민중은 시민의 안녕과 재산을 보호하자고 호소했다... 이러한 질서의식은 초기뿐만 아니라 '시민공동체 자치시기'에 들어가서도 잘 지켜져 광주시내 700여 은행 및 금융기관이 한 군데도 피해를 입지 않고 1,500억 원의 현금이 고스란히 보전됐다는 사실, 3~4건의 강력사건이 있긴 했지만 오히려 경찰이 엄존하던 이전보다 훨씬 적게 발생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화해와 질서의식은 투철한 민주주의 정신으로 승화되면서 시민 모두를 공동운명체로 묶는 바탕이 되었고, 고통분담을 공유하는 협동정신으로 표출되었다... 각기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놓는 미덕과 서로 양보하며 함께 인내하는 공동체적 정신이 아낌없이 발휘됐을 뿐,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김영택, 역사공간, 2010, p700~701

    • @pauladam6997
      @pauladam6997 11 개월 전 +1

      ​@@user-yc2hg4pq4s 그건 좌빨이 쓴 글이니까 그렇게 미화한것이지

  • @user-bu2uc5tw2l
    @user-bu2uc5tw2l 년 전 +5

    아무리 미화를시켜도
    명단공개와 불순자재거를
    하지않는한 폭동으로안다
    진압군경사상자도보상하라.

    • @3000Sync
      @3000Sync 년 전

      병진아, 2020년 대법원 판결 한번 읽어봐: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주장이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최근 A씨 등 3명이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에 위법 등 특정 사유가 없으면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제도다.
      (국가보훈처 보훈정책자료시스템): 2020년 보훈대상자는 5.18민주유공자 (4,406 명) 포함 총 841,119명
      (나무위키 발췌: 5.18 민주화운동 피해 내역) - 직접 사망:193명, 후유증 사망자:376명, 행방불명자 65명, 부상 3,139명, 구속 및 고문 피해자 1,589명임. 많은 사람들이 유공자명단 공개에 대해 물어보는데, 독립유공자는 1986년 공훈록이 만들어져 성함과 공적기록이 공개되고 있지만, 모든 유공자 명단은 법적으로 공개할수없음, 4.19, 6.25, 월남참전, 고엽제 후유의증, 기타 유공자 명단 또한 5.18 진압군도 정보 공개법에의해 공개를 하지 못합니다. 참고로 국가보훈처와 보상심의회는 법률 제22조의 규정에 의해 근거하여 2012 (이명박), 2017 (박근혜)에는 각각 96명과 152명이 5.18 유공자로 지명됩니다.
      5.8 유공자과 공적에 관심이 있는 분은 518망월묘지와 시청 기록관등에 30년전부터 사진.이름.나이.공적 기록과 공개된 내용을 열람하시고, 당원이면 5.18 진압군 명단, 참전유공자 (267,902명), 기타 (147,535 명) 보훈자 명단도 함께 공개하는 ‘정보공개법 개정청원’이 요구해봐, 여기서 자신의 무지를 자랑하지 말고.

    • @3000Sync
      @3000Sync 년 전

      그렇게 중요한 일을 역대정권(전두환 ~ 박근혜)에선 뭐 했냐? 지난 40여년간 뭘하다가 니는 여기서 떠벌이고 있냐?
      (참고: 5.18민주화운동 기간 계엄군 사망자는 총 23명, 그중 상당수인 13명은 계엄군간의 상호 오인사격으로 사망, 시위대와 교전하다 숨진 계엄군은 5명. 이분(22명, 오발사고로 순직한 1분 제외)들은 최근에 5·18기념재단, 5·18진상규명위원회 등 5·18관련 단체와 광주광역시 남구의회가 국방부에 5·18 계엄군 전사자에 대한 사망 구분 재심사를 요청함으로 국방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열어 “5·18계엄군 전사자 22명의 사망 구분을 전사자에서 순직(‘순직-Ⅱ’형)으로 변경했습니다. 그 잘난 쿠테타군부정권부터 어버버 정권까지 못한 일을 5.18관련 단체에서 했단다, 뭘 조금 느끼는 것 없냐, 병진아?

    • @user-yc2hg4pq4s
      @user-yc2hg4pq4s 년 전

      명단을 공개할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간단한 사실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는데, 광주항쟁의 경우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아직도 버젓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면 광주항쟁의 피해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들, 당시 광주에서의 폭력적인 무장진압을 명령하고 그것을 실행한 당사자들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그것도 사회 한쪽에서 영향을 강하게 미치는 위치에 남아있어 법원에서 해당 사건이 민주화항쟁으로 판결이 난 이후로도 관련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 @user-yc2hg4pq4s
      @user-yc2hg4pq4s 년 전

      @정원 오 일단 현재 보훈처에서는 5.18 유공자뿐만 아니라 국가유공자, 베트남 전쟁 고엽제 피해자들의 명단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고 오직 공개된 명단은,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들의 명단 뿐인데, 일부에서는 전공상군경, 특수임무수행자, 중장기복무제대군인들은 일의 특성상 공개하기 어려워서 그렇다며 독립유공자들은 공개하는데 이 사람들도 공개 못할 거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지만, 애초에 살아있는 사람보다는 사후에야 밝혀지는 경우가 대다수인 독립유공자들과 광주항쟁의 경우는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렵다. 애초에 관련 사건의 가해자, 그리고 피해자 모두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으며 당시를 겪고 새파랗게 살아있는 사람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과 사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 가운데 법적으로 어떤 것이 더 민감한 문제가 되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명단 공개하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북한군 개입설이라는 법적으로 이미 허구임이 밝혀진 설을 굳이 검증(?)하자며 나오는 것만 가지고도, 명단을 공개해야 할 법적인 근거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 허구이고 날조라고 판명된 왜곡된 주장을 검증하자고 법적 문제 소지가 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을 건드릴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사실 신상공개 자체가 범죄자들에게나 하는 조치임을 감안한다면, 극우 정치인과 네티즌들은 되려 민주운동가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있는 꼴이다. 이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면서도 자기 좋은 의견만 듣기 위해서 이런 사실들을 애써 외면하는 셈이다.

    • @user-yc2hg4pq4s
      @user-yc2hg4pq4s 년 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개된 광주항쟁의 이데올로기가 한국전쟁 이후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립된 자유민주주의였으며, 그것도 반공주의를 전제하는 자유민주주의였다는 점은 여러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김정한,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 소명출판, 2013 , 81쪽

  • @user-zx3qy4kf6l

    전남도청에 안에 할머니 얼굴
    북한군 최고 원수 리을설얼굴을 공개해 봅시다

  • @user-nf1lu6mt6v
    @user-nf1lu6mt6v 년 전 +3

    정보화시대란!
    지금도5.18같은
    행동하면당장구속된다.

  • @johnoh9722
    @johnoh9722 년 전 +5

    예수가 사람관리 잘못했네

  • @lleof3223
    @lleof3223 년 전 +4

    다들 댓글 조심해요~ 5.18 관련 함부로 말하면 범법자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yc2hg4pq4s
      @user-yc2hg4pq4s 년 전 +1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개된 광주항쟁의 이데올로기가 한국전쟁 이후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립된 자유민주주의였으며, 그것도 반공주의를 전제하는 자유민주주의였다는 점은 여러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김정한,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 소명출판, 2013 , 81쪽
      "북괴는 오판말라!"
      -광주 시내에 걸린 현수막

    • @lleof3223
      @lleof3223 년 전 +1

      @@user-yc2hg4pq4s 누가 뭐랬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네

    • @user-yc2hg4pq4s
      @user-yc2hg4pq4s 년 전

      @@lleof3223 5·18 민주화운동은 한국의 민주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냉전구조를 녹이고 민주주의를 쟁취함으로써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이후 필리핀, 태국,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한국의 전철을 밟기 위한 다양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한국 광주에서 일어난 항쟁 관련 기록물은 시민의 저항, 가해자 처벌, 보상 관련한 내용이 문서, 사진, 영상 등의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유네스코

    • @user-yc2hg4pq4s
      @user-yc2hg4pq4s 년 전 +2

      @@lleof3223 5.18 민주화 운동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향한 길고 긴 투쟁의 일부분입니다. 앞 세대가 자유선거를 확립하고 민주주의을 꽃피우려고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지금 젊은 세대가 배우고 진심으로 감사하길 바랍니다.
      노먼 소프, 전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 기자.

    • @lleof3223
      @lleof3223 년 전 +1

      ​@@user-yc2hg4pq4s 누가보면 내가 518 비난한줄 알것소?ㅋㅋㅋㅋㅋㅋㅋㅋ 518에 대한 의견 자체를 못 내게 막은 법이 독재라고 까는건데?ㅋㅋㅋㅋㅋㅋ 둘 차이 모르겠니?

  • @user-ni5bo3nr5q
    @user-ni5bo3nr5q 년 전 +5

    조비오??? 볼가치가 없다

    • @user-yc2hg4pq4s
      @user-yc2hg4pq4s 년 전 +3

      "북괴는 오판말라!"
      -광주 시내에 걸린 현수막

    • @user-ni5bo3nr5q
      @user-ni5bo3nr5q 년 전 +1

      @@user-yc2hg4pq4s

    • @3000Sync
      @3000Sync 년 전 +2

      초등학교 중퇴한 니보단~~

    • @user-ni5bo3nr5q
      @user-ni5bo3nr5q 년 전

      @@3000Sync
      응~본인 일기장 내용

    • @3000Sync
      @3000Sync 년 전 +1

      조비오: 그는 평소 봄햇살처럼 온화했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품이었다. 2008년 덕망 높은 성직자에게 주는 ‘몬시뇰’에 올라 교황의 명예사제가 됐다. 성직자로서 평생을 고결하게 살았던 그는 78살이던 2016년 지병으로 선종했다. 그는 2년 전 미리 작성한 유언서를 통해 “도서와 유품을 소화자매원에 기증해 달라. 몸 안 장기는 아픈 환자를 위해 써 달라”고 당부했다. 선종 당시 통장의 잔고는 ‘0원’이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시기에 광주시민들이 총탄에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한 뒤 시민수습위원을 자청했고 신군부에 의해 체포돼 김대중과 함께 감옥 생활을 하였다. 이후에도 내란 음모 핵심 동조자로 규정되어 감시받는 생활을 하였지만 시국 미사를 집전하는 등 독재 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다.[2][3][4] 조비오 신부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증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두환은 조비오 신부를 '악마'로 비하하여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2019년 3월 11일 광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 @mjmj7226
    @mjmj7226 년 전 +6

    ㅋㅋㅋ 전라도 참 대단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yc2hg4pq4s
      @user-yc2hg4pq4s 년 전 +1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개된 광주항쟁의 이데올로기가 한국전쟁 이후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립된 자유민주주의였으며, 그것도 반공주의를 전제하는 자유민주주의였다는 점은 여러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김정한,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 소명출판, 2013 , 81쪽
      "북괴는 오판말라!"
      -광주 시내에 걸린 현수막

    • @3000Sync
      @3000Sync 년 전 +1

      병진아, 반신반인을 추모함? 니놈도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