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대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백제 의자왕 / KBS대전 20180923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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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일 2020. 05. 03.
  •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삼천궁녀와 함께 향락에 빠져
    나라를 망하게 한 패망군주의 대명사로 알려져왔다.
    과연 사실일까?
    백제 의자왕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풀어보고 백제가 남긴 문화유산을 만나본다.
    #백제의자왕 #백제 #KBS다큐멘터리
    KBS대전 20180923 방송
    KBS 대전
    daejeon.kbs.co.kr/
    KBS대.세.남 뉴스
    / @kbs2094
    대케 KBS대.세.남
    / @kbsculture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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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807

  • @mykang6574
    @mykang6574 년 전 +3

    유익한 내용이네요. 잘보고갑니다

  • @user-wx6ut6em3w
    @user-wx6ut6em3w 3 년 전 +9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 @alcohollovetv5893
    @alcohollovetv5893 3 년 전 +2

    잘봤습니다 굿

  • @user-km3mu7jt4e
    @user-km3mu7jt4e 3 년 전 +1

    잘봣습니당~^^

  • @timesun630
    @timesun630 3 년 전 +51

    오늘날까지 남자의 가슴을 울리는 사나이 계백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년 전 +4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kyucho3251
      @kyucho3251 2 년 전 +1

      계백 장군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장군임

    • @user-ri2ro3ce4h
      @user-ri2ro3ce4h 년 전

      정말충신이죠 계백은

    • @user-ri2ro3ce4h
      @user-ri2ro3ce4h 년 전

      장군 최고의장군이죠 계백장군님은

    • @wealthyj4234
      @wealthyj4234 2 개월 전

      무령왕도 일본출생 일본놈. 일본은 백제와 마한은 같은 피. 마한과 백제 지역의 반일은 일본과 같은 혈통을 숨기기 위한것이고 신라와 가야지역의 반일은 마한, 백제와 민족도 다르고 나당연합군과 일본연합군과 싸울때부터도 그렇고 백제패망후 마한, 백제의 혈통 일본이 신라를 많이 공격했고 눌지왕 셋째 동생 미사흔이 일본에 볼모로 잡혀 박제상이 구출해오던 사건도 있었기에 마한과 백제의 같은 혈통 일본에 쌓이고 쌓인 정신적 반일이고 고구려지역의 반일은 김정일 생모도 재일교포이고 김정일 아버지 김성주도 항일투사 김일성 장군을 베낀 인물이라 인민을 통치하기 위한 도구적, 통치적, 정치적 반일이지.
      대마도인들은 쿠빌라이 칸이 고려에 압력을 행사 배
      900척, 고려병사 2만명 차출을 요구(충선왕처럼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로 정통 몽고인은 아니지만) 몽고혈통 충렬왕이 이를 받아들여 합포(지금의 마산)에서 1274년 10월 30일 출정 10월 5일에 대마도에 도착하였으나 태풍으로 실패. 이때 나온 말이 카미카제이고 1281년도 재침략했으나 실패. 후에 1389년 창왕의 명령에 의해 대마도가 정벌. 그 후 대마도인들은 대마도에서 147킬로 떨어진 일본보다 대마도에서 49킬로 떨어진 조선에게 대마도에 편입시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조선이 버림. 그리고, 일본이 2차대전 패망후 이승만이 이승만 라인을 그어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편입하려 했으나 한국전쟁 발발해서 우리가 스스로 놓친 곳이고 그래서 대마도인들은 조선때 자신들을 받아주지도 않고 고려때도 몽고와 함께 공격당해 자신들의 고향땅임에도 조선과 한반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고 또, 1592년 정명가도 외친 토요토미(하시바) 히데요시도 백제계임. 자신을 따르지 않는 영주들에게 토지보상 해줄곳이 없어 베이징에 본부를 설치하고 인도까지 처들어간다는 골조의 임진왜란도 실제는 신라에 패해 한반도에서 쫓겨난 자신들의 선조 백제의 고향땅을 찾기 위함이었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신라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토요토미 무리들의 선봉장 세례명 아우구스티노의 고니시 유키나가와 이시다 미츠나리, 모리 데루모토 등의 백제계를 물리치고 일본 전국통일을 완성. 그때부터 영주들의 재산을 탕진시켜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려는 목적과 에도에 짱박혀 조선에 침공하지 않은 신라계 장수라는 이유가 맞아 떨어져 1607년부터 1801년까지 총 12회 이즈하라 서산사에서 묵게하고 이끼와 하카타 통해 (1번은 일본과의 의견이 맞지 않아 대마도에서 되돌아감. 그래서 일본 방문은 총 11회) 닛코까지 방문하게 되었는데 조선통사사도 도쿠가와 막부가 맞아들임. 그뿐 아니라 역관들도 다녀감. 아이러니한게 일본에 맞서 항일운동 하시던 대마도 수선사의 최익현 선생 기념비는 뜻있는 일본인과 너무나 아이러니하게도 하나회에서 만듦. 그외 어느 대통령 및 여야 정치인들은 다녀가지도 않음. 나가사끼 원폭 기념관 엘리베이터 타는 곳 옆에 세로 약 70. 가로 30 정도 되는 재일조선인 원폭 피해자 기념비는 대통령 및 여야 정치인들은 관심도 없었고 뜻있는 일본인들과 재일교포분들이 세움. 이즈하라의 가네이시성터 근처에 있는 덕혜옹주 결혼봉축 기념비의 그 주인공 덕혜옹주께서 매일 정신이 아프셔서 한밤중에 소복만 입고 돌아다니신다는 것도 육영수여사가 박정희 대통령한테 알려서 1969년 한국으로 모신거임.
      일본에 의해 이병도가 집필한 역사책으로 좌파, 우파가 지들 꼴리는대로 역사 만드는 나라가 한국이지만 마한과 백제는 정통 일본은 맞는데 정작. 마한, 백제 지역인들은 일본의 우수한건 자신들로부터 건너갔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한테 불편한 진실은 반일로 커버 치는 이중잣대 오짐.
      마한,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 다 민족이 다른데 마한을 흡수한 친일국가 백제가 친중국가 신라에게 패하고 또 663년 일본에서 나니와에서 4만2천명을 교코쿠가 해동증자 돕자고 부여풍, 카미츠케노노키미 와카코에 유능한 아베노 히라후까지 나섰는데 패해서 이스라엘처럼 한반도를 노린것이고 신라시대때 신라를 못살게 군것이지. 천황의 부계 무령왕도 일본 각라도 출생, 모계도 백제 귀족 화을계 딸 고대신립. 하시바 히데요시도 백제계. 분로쿠게이초 이후 세키가하라에서 신라계 도쿠가와가 승리하고 1607~1801년까지 영주들의 재산을 탕진 쉽게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려던 그와 조선 임진왜란에 출전하지 않은 것 그다음에 신라계 후손이라는 게 맞아 떨어져 조선통신사가 다녀 가게 됨. 그래서 오리지날 토착왜구는 우리나라 서쪽 지역임. 그래서 우리나라는 위쪽으로 고구려. 좌측으로는 백제. 우측으로는 신라계. 좌측 지역이나 좌파 지역에서 하는 반일 운동은 자신들의 핏줄을 속이기 위한 반일운동임. 진짜 토착왜구는 우리나라 서쪽 지역임. 매년 천황 제 사단들이 부여에 와서 제사 지내고 감. 그리고 일본 전역에 있는 전방 후원분은 영산강 아래쪽에 분포 되어 있음. 6.25전쟁 전에 북한의 내각이 진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에 조사받던 친일파 였음. 남한의 내각은 항일 운동가였음. 그리고, 김정일 앞 어머니도 일본 재일교포. 북한과 남한의 남로당과 그리고, 특정지역과 남로당과 빨치산 그 후손에 의해서 남한의 역사가 완전히 토착왜구를 다른 지역에다 덮어씌움. 자신들이 일본인의 선조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하긴. 고려 충선왕도 쿠빌라이칸 손자.
      아직도 우린 하나의 나라가 아님.
      매년 부여에 천황사절단 제사 지내러 옴.

  • @user-nh6jb8sj3w
    @user-nh6jb8sj3w 3 년 전

    좋아유

  • @user-bd7em2bb7q
    @user-bd7em2bb7q 3 년 전 +15

    백제 국 의자왕에 관한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모두 승리 !!!

  • @ggul
    @ggul 3 년 전 +16

    백제 역사유적지구 부여 공주 익산은 여행하기 참 좋고 의미있는 곳이죠 아름답고 뜻깊고요...

  • @user-od6xo5lw4s
    @user-od6xo5lw4s 3 년 전 +4

    36:34
    여기서 부터 보시면 ᆢ

  • @elite0506
    @elite0506 3 년 전 +66

    예식진 개새만 아니었어도 천혜의 요새 웅진성에서 버티는 동안 지방군들이 나당연합군 포위해서 백제가 생존했을 수도 있는데... 너무 아쉬움

    • @user-mp4fd2to4l
      @user-mp4fd2to4l 3 년 전 +10

      그 예식진 놈 신라의 뇌물을 잔뜩 쳐먹었겠죠. 신라가 대륙의 멸망잔존세력이 한반도에 잠입해 세력을 굳힌후 신라라 칭한거라면서요

    • @user-vr5bd7jv1x
      @user-vr5bd7jv1x 3 년 전 +10

      @@user-mp4fd2to4l 신라뇌물 먹은애는 임자라는애고
      예식진은 중국뇌물먹었겄지

    • @user-mp4fd2to4l
      @user-mp4fd2to4l 3 년 전 +8

      @@user-vr5bd7jv1x 와 정말 대단하군요, 여튼간에 그신라지배층흉노눔들이 아직도 일제시대때패권잡아 이나라를 다스리니 답답하여이다

    • @user-vr5bd7jv1x
      @user-vr5bd7jv1x 3 년 전 +5

      @@user-mp4fd2to4l 흉노는중국이아니다
      싫어할이유는없다

    • @user-vr5bd7jv1x
      @user-vr5bd7jv1x 3 년 전 +1

      @@user-mp4fd2to4l 임자가 좌평이었나
      암튼 백제는 끝났다고봐야지
      좌평은 최고관직인데

  • @user-bg4bs1mm4x
    @user-bg4bs1mm4x 3 년 전 +32

    백제의멸망은 마음이 아프다 ㅠ.ㅠ

    • @user-hh8od9zs6c
      @user-hh8od9zs6c 3 년 전 +2

      예식진 때문이지

    • @scap4437
      @scap4437 3 년 전 +1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전라도는 백제가 아닙니다
      전라도는 6세기까지 독자세력을 유지하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동성왕 무령왕때에도 여러차례 전라도 정벌의 기록이 있으며
      백제 말기에 식민지 형태로 복속되었을뿐
      벡제인의 정체성은 한번도 가진적 없던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왜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만 있다는것이 그 대표적 근거죠
      백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고 많이쳐줘봤자 익산까지이며
      그 밑 전라도는 백제인의 정체성과 다른 지역입니다
      정작 충청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전라도 사람이 스스로 백제인이라고 우기는거 보면 너무 웃기길래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 @user-pe2hv4dq4g
      @user-pe2hv4dq4g 3 년 전

      @@scap4437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user-li8ys9to6z
    @user-li8ys9to6z 3 년 전 +14

    힘든 마지막왕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user-wx6ut6em3w
    @user-wx6ut6em3w 2 년 전 +1

    평호

  • @ManChoitube
    @ManChoitube 2 년 전 +1

    소중한 영상 고맙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예식 장군의 배임도 언급되면 어땠을까 합니다. 최만드림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7 개월 전 +1

    초기의 십제~ 제의 열배를 의미하고, 백제~ 제의 100백를 의미하고, 물수변은 헷갈리지 말라고 붙은 것입니다.
    22담로를 직역하면, 노나라에 이르는 22입니다.
    해설하면, 백제의 수도는 노나라 지역에 있으며 22개의 기착점으로 연결된다. 후대에는 기착지의 제후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지중해의 기착점을 연결한 로마와 같습니다.

  • @whdeka77
    @whdeka77 2 년 전 +2

  • @user-ru9sv9tp9p
    @user-ru9sv9tp9p 3 년 전 +26

    백제의자왕♥계백장군님
    성충흥수백제영웅입니다

    • @user-ru9sv9tp9p
      @user-ru9sv9tp9p 3 년 전 +3

      감사합니다♥♥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년 전 +1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insideq4990
      @insideq4990 3 년 전

      @@user-hm8op8bv1h 잘보았습니다, 6부촌중 하나인 마한 ,모르는 분들 많을겁니다 .

  • @user-bi7ge9si9j
    @user-bi7ge9si9j 3 년 전 +12

    대백제인들아! 일어 서거라! 새로운 백제의 역사를 쓰자!

  • @user-kg6bo9pq2r
    @user-kg6bo9pq2r 3 년 전 +4

    삼국사기 최치원열전....'고구려 백제가 강성할때는 백만 강병으로 오나라, 월나라, 제나라, 연나라 를 침공하여, 중국의 아주 큰 해가 되었습니다.'

  • @user-mq6ow5md4i
    @user-mq6ow5md4i 3 년 전 +4

    역사는 승자의 기록 🦋

  • @jenith77
    @jenith77 3 년 전 +11

    신라의 어이없는 당나라 끌어들이기.
    사대주의의 비극

    • @hwashin1888
      @hwashin1888 3 년 전 +2

      ㅋㅋㅋ 당은 선비족임 애초에 신라 왕가가 북방 민족인데 당이랑은 남남이 아님 여진이 애신각라 청의 기원이고.. 그리고 백제가 왜구랑 손잡고 신라 친거는 잊었는가?? 우리나라는 삼한에 기초를 두고잇음 애꿎은 역사 선동에 당하지마라... 제발좀
      밑에댓글도잇네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Silla__Kim.Yu-shin
      @Silla__Kim.Yu-shin 5 개월 전

      속이다 시원하다 @@hwashin1888

    • @user-zh2hi9rx7t
      @user-zh2hi9rx7t 2 개월 전

      아니야, 님 혹시 사비 출신이세요. 전 경주에 시조 본가가 있음, 사실 이런 말씀 하기 뭐한데 그때 문제가 있어요.6세기 그 있잖아요. 신라신국인거 유신공께서 기어이 일냈어요. 산신을 불러서 신검을 얻어 사비를 치죠. 산신께서 김유신공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대인 평가를 하셨어요. 경주 사람이면 단석산 다 알죠. 님이 그걸 아셔야 당니라도 이용함은 당은 백제와 존속 전쟁을 포기하지 않죠. 운명이라 신라가 알고 이용한 겁니다. 당나라 백성도 얼마나 노력했으면 당나라에 헌원인간 천신이 나타났다고 당서 6세기 기록되 있습니다. 신이 나타날 정도면 음양운동을 많이 쌓은거죠. 백성이 정성이 크다란 뜻입니다. 불평불만 적고 근면하고 즐겁게 학업을 이루고 국력을 오래 키우죠. 아시죠.

  • @user-ik8qh7gx9g
    @user-ik8qh7gx9g 3 년 전

    👍

  • @user-hc8in8dd9z
    @user-hc8in8dd9z 3 년 전 +3

    옛날에도 동맹! 지금 21 세기도 동맹 ! 자유 국가와 동맹! 힘길러 세계를 이끌어갈 1위 국가로 만들자!

  • @user-wv3xf7jl4y
    @user-wv3xf7jl4y 3 년 전 +9

    왕자 부여풍의 묘는 어디에 있지요?
    부흥운동에 온힘을 쏟았던 부여풍에 해선 가묘도 안만드나요?

    • @shp2310
      @shp2310 3 년 전 +2

      일본에서는 부여풍을 중신겸족 일본최고 가문 후지와라가문 시조로 보더군요 교기왕자 부여용은 중대형황자라 불리고 을사의변을 일으키고 천지천황이 됐구요

  • @user-gr6oe7dl8p
    @user-gr6oe7dl8p 3 년 전 +24

    참 이해가 안가네요 ㅠ ㅠ
    자기네들 지금 그 시대 사람들이고 ?
    지금은 다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들 아닌가 ?
    왜들 역사를 말하면서 싸우고 난리들이고
    지금 시대에 고구려가 어디있고 신라가 어디있고 백제가 어디 있는고
    역사는 알아야 하겠지만은 지역감정 싸움은 좀 불필요한 감정싸움인뜻 싶은데
    참 이상한 사람들이야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3 년 전 +2

      과거의 사실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마음보다 현재의 불만과 열등감을 폭발하는 수단으로 역사를 이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어그로끌어서 선동하는 사람들이 문제이지요 사실 예식이 의자왕을 강압적으로 결박하여 끌고나왔다는 기록은 전혀 없고 당측에서 그런 사실이 있다면 기록 안할 이유가 없는데 다만 의자왕과 같이 나왔다는 점 그리고 당에 가서 예식집안이 벼슬 얻고 지냈다는 점을 근거라고 예식은 배신자 매국노 의자왕은 비운의 군주 이런 식으로 여론을 형성하는데 사실 당시 백제가 처한 상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당군 13만이 바다를 건너는 시점부터 99%는 백제멸망을 피할수 없었습니다.
      의자왕은 백제 필생의 전략을 제안한 윤충 성충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당이 바다를 설마 건너겠어 하는 심정으로 외교를 등한시하다가 동서 양면으로 침공군을 맞이했고 상륙한 당군을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했지만 백제군이 야전에서 계속 패하고 결국 한다는게 자기 아들에게 도성을 맡기고 본인은 기껏 코옆인 공주로 도망칩니다. 이건 그냥 혼돈의 카오스 상황인거지 무슨 전략적 대비책 그런게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3 년 전 +2

      예식 배신자설 이야기가 갑자기 대두된게 역사추적이라는 케베스에서 오래전에 내보낸 프로였습니다. 시청률을 높이려면 어그로성이 짙은 제목과 내용이 있어야 하는거 이해는 하지만 확실하게 검증된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공산성주 예식의 배신으로 백제가 결정적으로 무너진것 처럼 대중들이 인식하게 했으니 그 해약이 좀 지나친것 같습니다.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싫어하고 혐오하는 이미지를 예식에다 투영해서 분노의 댓글들을 달게 되었습니다. 의자왕의 행적과 백제의 상황에 대해 조사해보면 백제로서는 뭘 어떻게 할수가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 @user-yq3sb9ud2m
      @user-yq3sb9ud2m 3 년 전

      뭐어떤대학역사학과교수라는사람이가상의고구려통일을상정하여그것이마치실제인양 고구려찬가를유툽에내놓고 고구려영토를확대해석하고실증적인사료없이떠들고발해문제도 마치발해가완전한우리의역사인것으로그어떤검증도없이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것도문제가있습니다 거기에온갖떠도는글이붙어다니는것도문제가있다고봐요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3 년 전

      @@sangjunlee7939 기벌포에서 참패 / 의직2만군사 전멸 / 도성 30리밖 1만 전사자 내고 참패 / 태자에게 도성 맡기고 웅진으로 도주 / 항복 - 이게 전략적 판단이라고요??
      신당서 삼국사기 예식진묘비 어디에도 포박이니 압송이니 하는 내용 없는데요
      신라 보급로 남천정(이천)에서 옥천 금산추부면까지 확보한지 이미 수십년 넘었고(금산 추부 동편에 신라석성과 고분 수십기 확인됨) 거기서 대둔산 지나면 바로 논산 연산면 즉 황산벌입니다. 보급에 아무 문제 없습니다.
      백제 10만 군에 근접 자료 없습니다. 사상자와 부흥전쟁시기 각 성 수비병들 추산해서 아무리 높이 잡아도 5만 넘기기 어렵습니다.
      웅진성이 난공불락의 요새마냥 역사추적에서 이야기했는데 공산성 한번 가보시면 느낌이 많이 다르실 겁니다. 성벽이 금강과 면해있는 옛나루터 앞에 배 붙여놓고 보병들 쏟아내면 대책 없습니다. 더군다나 육지쪽 성벽도 방어력이 그닥 좋지 않으며 성곽길이에 비해 내부 면적이 좁은 구조라 많은 인원이 오랜시간 버틸수도 없습니다.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3 년 전

      @@sangjunlee7939 첫번째 상륙을 막지 못해 패한것을 기벌포전투로 잘못 썼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예산 대흥면의 임존성과 공산성은 서로 옆에 있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 @user-sk6zb4rd2r
    @user-sk6zb4rd2r 3 년 전 +34

    가슴이 아프다~~~~22담로를 보더라도 동 아시아 강국인 백제가 무너졌다는거~~

    • @scap4437
      @scap4437 3 년 전 +13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전라도는 백제가 아닙니다
      전라도는 6세기까지 독자세력을 유지하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동성왕 무령왕때에도 여러차례 전라도 정벌의 기록이 있으며
      백제 말기에 식민지 형태로 복속되었을뿐
      벡제인의 정체성은 한번도 가진적 없던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왜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만 있다는것이 그 대표적 근거죠
      백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고 많이쳐줘봤자 익산까지이며
      그 밑 전라도는 백제인의 정체성과 다른 지역입니다
      정작 충청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전라도 사람이 스스로 백제인이라고 우기는거 보면 너무 웃기길래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 @mun4946
      @mun4946 3 년 전 +5

      @@scap4437 그것도 그렇고 각종 영화에서 백제는 전라도 방언, 신라는 경상도 방언을 썼으니 일반 국민들 인식이 그래된 영향도 클듯 합니다.

    • @user-mh7fw4ts6b
      @user-mh7fw4ts6b 3 년 전 +2

      @@scap4437
      공부좀하시오 아님 조용히 하던지 아직도 저런상식을 가진사람이 있네ㅉㅉ

    • @user-gf2lb1zy9o
      @user-gf2lb1zy9o 3 년 전 +1

      @@user-mh7fw4ts6b
      영산강 유역의 마한이 백제에 병합되는 시점은
      문헌에 기록된 백제 지방제도인 5방제 정비와
      옹관고분이 굴식돌방무덤으로 바뀌는 6C 중엽.
      완주 배매산성, 순천 검단산성 등은 6C 초까지
      영산강 유역 마한이 백제 영역이 아님을 보여줘.
      5C 말 제작된 나주 신촌리 9호분 출토 금동관
      제작 기법·양식, 백제 출토 금동관과 크게 달라.
      5세기 후반 들어 차령산맥을 넘어 전북 지역으로 남하하던 백제는 노령산맥 이남 진출이 강력한 마한 남부 연맹체의 반발로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자,
      지리산 방면으로 방향을 틀어 남원을 경유하여 섬진강을 통해 광양만으로 나아가려 했다고 본다.
      그러나 상기문, 마련 등의 국가들이 6세기 중엽 무렵까지도 독자적 정치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백제의 이러한 의도는 여의치 않았다고 본다. 말하자면 6세기 중엽까지도 마한 연맹체는 굳건히 연맹체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병도 박사는 왜 마한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았나?
      양직공도 백제 방소국 기사는 간접적이나마 521년까지 광주·전남지역을 중심으로
      백제에 통합되지 않은 마한 제국들이 상당수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하며, 이것만으로도 기존 통설인 369년 근초고왕 병합설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마한의 기록을 볼 때, 근초고왕 때 분명히 멸망하였다고한다. 하지만 후에 다시 등장하니 나는 이게 큰 의문이다.
      5세기 이후 금강 이남 지역의 동향에 대한 사료로서 中國正史 百濟傳, 『日本書紀』 應神紀를 검토하였다. 검토 결과, 두 종류의 사료 모두 5세기까지 백제가 금강 이남 지역에 대한 영역화를 관철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5세기 이후 영산강 및 섬진강 유역의 동향에 대한 사료로서 여러 사료 『三國史記』·『日本書紀』, 中國正史 百濟傳 등 여러 사료를 검토하였다. 이들 사료를 통하여 영산강 유역이 6세기 중반의 어느 시점에 백제의 영역이 되었고, 무령왕대까지 ‘복속’에 머물렀던 영산강 및 섬진강 유역의 소국들이 성왕대에 영역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마한이 빨리 사라졌다는건 친일 논란이 있는 이병도 박사의 주장인데..
      마한이 부끄러운 나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부정하시나요;

    • @user-mh7fw4ts6b
      @user-mh7fw4ts6b 3 년 전 +1

      @@user-gf2lb1zy9o
      사료를 잘살펴보시고 공부해서 다시 올리시오

  • @user-wv3ph8ic4q
    @user-wv3ph8ic4q 3 년 전 +32

    언제 제작된 영상이지? 예식의 배신으로 의자왕이 잡힌 걸 모르나? 아무래도 예전 영상 같군.

    • @user-qe9nu9cx7n
      @user-qe9nu9cx7n 3 년 전 +1

      초선인 부여군수가 인터뷰 나온거 보면 2018년 이후 같네요.

    • @northwingvoidby5867
      @northwingvoidby5867 3 년 전 +2

      전라도하면 반역, 배신이제~

    • @Espresso_crema
      @Espresso_crema 3 년 전 +5

      @@northwingvoidby5867 이러니 우리나라가 발전이 없는겁니다. 그냥 조선인들 국민성이 누구에게 이용당하기 딱 쉽습니다 몰아가기 잘하구요

    • @northwingvoidby5867
      @northwingvoidby5867 3 년 전

      @@Espresso_crema 조선족놈은 중국으로돌아가라

    • @northwingvoidby5867
      @northwingvoidby5867 3 년 전

      @@Espresso_crema 대깨문들 하는짓거리나 전라도 종자들 하는 짓거리나 똑같은걸 보니 인터넷의 거지 종자들이 다 전라도 것들~ 개소리 적어놓고 댓글은 막고 지우고 ㅋ

  • @user-qv9ri2wn7v
    @user-qv9ri2wn7v 3 년 전 +12

    이규화 성우 덕분인지 이해가 빨리된다

    • @donggeun4233
      @donggeun4233 3 년 전

      삼천궁녀랑 술 먹다 그랬겠지

    • @user-cr4cx9fq1f
      @user-cr4cx9fq1f 3 년 전

      @@donggeun4233 아직도 삼천궁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네

  • @user-sb2yv4xq1v
    @user-sb2yv4xq1v 3 년 전 +3

    서동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 @user-hw9yz8du1l
    @user-hw9yz8du1l 3 년 전 +1

    체어킹 ㄷㄷ

  • @user-yg3he4sb4h
    @user-yg3he4sb4h 3 년 전 +3

    상고사를 들먹이지 못 하게 하는 중국의 개입 된 법안입니다.

  • @cadet264
    @cadet264 3 년 전 +5

    역사만따로 모아주세요

  • @user-dp3if2we1p
    @user-dp3if2we1p 4 년 전 +43

    예식장군의 반란으로 묶여 항복당한 의자왕.예식은 당나라에서 대장군이 되어 출세했다.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년 전 +16

      배신의 아이콘 백제
      개로왕 또한 백제 배신자들에 의해 참수당함
      의자왕 또한 백제 장군 예식이 당나라에 갖다 바침

    • @madebycorea
      @madebycorea 3 년 전 +15

      @@user-hm8op8bv1h 배신과 뒤통수의 아이콘 신라 역사적 진실 외면말것

    • @user-yy6gv6bg6i
      @user-yy6gv6bg6i 3 년 전 +12

      @@user-hm8op8bv1h 배신의 아이콘은 신라임
      키워준 고구려 배신. 200년동맹인 백제배신하고 황해도접수. 의자왕에게 수도경주까지 털리고 멸망까지간거 당나라가 백제 없애주니 당나라배신. 후백제 견훤이 신라 경애왕으로만들어주니 백제에게 또다시배신하고 뒤질까봐 후백제배신 왕건에게 나라바치고 왕족.귀족들 도주ㅋㅋㅋ 신라역사자체가 시작부터 망할때까지 배신.찌질.뒷통수밖어없음 이건팩트ㅋㅋㅋ
      스스로해낸건 왕건에게 나라바친거ㅋㅋㅋ
      성장은 고구려덕분
      최전성기는 진흥왕때 동맹백제통수치고 황해도 접수
      망할때는 좁밥찌질이를 아량으로 대한 후백제통수 그뒤 뒤질까봐 왕건에 나라바치고 목숨부지ㅋㅋㅋ
      ㅆㅂ 역사랄게있냐? 찌질.배신.통수 뿐인데?
      삼국통일?
      너는 미국이 아프리카에서 제일약한 찐따족노예삼아 아프리카정복하면 찐따족이 아프리카정복한게 되는거였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분이 당나라 노예였는데 통일드립은 너무웃기지 않음?ㅋㅋㅋㅋㅋ

    • @user-yy6gv6bg6i
      @user-yy6gv6bg6i 3 년 전 +10

      @@user-hm8op8bv1h 신라가 가야에게 안뒤지고 생존가능했던이유는?ㅋㅋㅋㅋ
      신라가 백제에게 안뒤지고 생존가능했던이유는?ㅋㅋㅋ
      신라가 황해도 접수가능했던 이유는?ㅋㅋㅋ
      신라가 백제접수 가능했던 이유는?ㅋㅋㅋ
      신라 왕족.귀족이 생존가능했던 이유는?ㅋㅋㅋ
      ㅆㅂ 스스로한건 왕족.귀족들 백제에게 안뒤지고 살려고왕건에게 나라갖다 바친것뿐...
      내말중 팩트아닌거 반박바람 ㅋㅋㅋㅋ
      그래서 그지역이 좁밥정신발상지라 불리는거임ㅋㅋㅋ

    • @user-yy6gv6bg6i
      @user-yy6gv6bg6i 3 년 전 +13

      @@user-hm8op8bv1h 신라왕은 초기 고구려가 임명했고 후기는 백제가 임명한건 아는지? ㅋㅋㅋㅋㅋ신라는 이간질.뒷통수.배신.구걸.찌질.말고 말할만 역사가 있는지 댓구점 ㅠ

  • @tschung5322
    @tschung5322 년 전 +3

    나당연합으로 백제를 물리친 신라는 청천강이남을 차지하고 그넓은 고구려땅으ㄹ 당에 뺏아긴 서글픈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400년 역사를 넘어 고토를 수복해야합니다.

  • @JCST-TV
    @JCST-TV 3 년 전 +3

    三天을 패주라해서 승자의 장난질이 겠죠

  • @TV-oy6me
    @TV-oy6me 3 년 전 +2

    너무나 아쉽고 슬픈 역사다~

  • @user-xh1dr2vu9f
    @user-xh1dr2vu9f 3 년 전 +6

    의자왕
    남자답게 살다.

  • @user-dr3cj3hk3z
    @user-dr3cj3hk3z 3 년 전 +9

    중국사람(한족)이 아닌 북방의 유목민선비족이 세운 당나라, 당나라는 수나라와 같이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
    이걸 둘다 이겼던 고구려
    대단하다 우리민족

  • @user-wj1yb1ff6w
    @user-wj1yb1ff6w 2 년 전 +1

    발해도 한때는 해동성국이라 불리는 대제국이였는데 실제로 고구려보다 땅도 넗었는데 망하는데 2주걸림 내부배신으로 멸망한나라의 특징내부배신임 부흥군도 스스로무너진거지 나당연합에 져서 무너진거아님

  • @user-nj5pq4rp1l
    @user-nj5pq4rp1l 2 개월 전

    부여를 갈 때마다, 계백장군을
    본다. 의자왕의 패배는 아쉽다. 그래도 신라 대야성을
    정복한 때도 있었는데...

  • @user-nr3kl7gw9p
    @user-nr3kl7gw9p 3 년 전 +7

    방심의 대가

  • @user-hv4br3fu2t
    @user-hv4br3fu2t 3 년 전 +7

    그때 고구려가 3국
    통일 혔다면 만주땅은?
    ㅋ!
    아깝다!!!!

    • @zzohhodduoccohlh3493
      @zzohhodduoccohlh3493 7 개월 전

      그럴수가 없어요 고구려는 말갈 거란등 유목민족들도 섞여서 살았는데 유목민들이 반란일으키는 경우도 있어서 내전도 났었고 고구려 지배계층들인 평양성파와 국내성파와의 갈등이 심했었고 그리고 요동지역의 국경을 안정시켜야 백제 신라를 칠수있었는데 양면전선은 고구려에겐 큰부담이었고요

  • @user-ii6yx6my7k
    @user-ii6yx6my7k 3 년 전 +2

    대백제 마지막왕의 가묘를 만들면서
    저리 초라하고 볼품없이 만들다니.

  • @timo1115
    @timo1115 3 년 전 +4

    인재활용 실패와 외교력의 부재.
    그리고 자만심
    지금 시대에도 교훈이 될거같다.

  • @kabin2525
    @kabin2525 2 년 전 +1

    뚱딴지 같은 소리지만 나레이션하시는분 통키에서 민대풍 성우분인가요?

    • @eugenehwang808
      @eugenehwang808 2 년 전

      X파일 멀더와 스컬리에서 멀더 성우분이십니다

  • @myeongcheolsin4552
    @myeongcheolsin4552 3 년 전 +5

    편협한 반도 사관으로 편견을 가진 강단 사학자들 두뇌를 바꾸지 않고서야 우리 고대사를 밝힐수가 없다!

  • @bongpark2483
    @bongpark2483 3 년 전 +6

    극우처럼 우리 진영도 예방 차원에서 판결 전 판사를 집중 난타해야 한다

  • @user-xi1zr6kn8p
    @user-xi1zr6kn8p 3 년 전 +12

    삼천궁녀? 삼십궁녀겠지! ㅜ ㅜ ㅠ

  • @user-im8jc4dt1i
    @user-im8jc4dt1i 3 년 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게 비하라고 말하는 사람들 조금 웃김..;; 당연한거지 나라가 멸망하면 약탈 당하고 수탈 당하고 유물이나 기록들이 사라져서 극소수만 남을꺼고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500년후에나 써졌는데 그때 남아있는 기록들 모아 썻을껀데 많을리가 만무하지..삼국사기 백제본기는 고작 5권임..고구려본기는 그래도 9권정도 쓸정도 남았는데 같은 700년 역사에 이정도...신라도 천년이나 되는데 12권밖에 안되는데 이정도 기록으로 역사 다 안다는듯 운운하는게 웃긴일인듯 우리가 모르는역사는 많아요 ㅋㅋㅋㅋ;;

  • @tschung5322
    @tschung5322 년 전 +1

    의자왕의 3천궁녀라는 허무맹란한 거짖기록을 남긴 나뿐넘...
    철저히 연구하여
    바로잡아야합니다

    • @user-zh2hi9rx7t
      @user-zh2hi9rx7t 2 개월 전

      사비 그터서 궁궐의 축조규모로 볼때 3000명이 들어갈 규모냐 아니다.
      삼천명이 먹고 살궁터는 아니다.

  • @user-zh2hi9rx7t
    @user-zh2hi9rx7t 2 개월 전

    근초고왕 광개토대왕 이런 분들 논하자. 정확한 도리를 많이 얻는다.

  • @user-tn3eh7xh4y
    @user-tn3eh7xh4y 3 년 전

    왜 여전에 방송한 내용하고 다른거죠?

  • @sergios8194
    @sergios8194 2 년 전 +1

    신라의 외교적 승리. 허나 로망은 백제일지어니!

  • @user-yg3he4sb4h
    @user-yg3he4sb4h 3 년 전 +1

    젤 먼저 심판의 나라는 중국입니다. 6개의 성으로 나뉘어 질 중국입니다. 중국 3세대는 사회주의를 무너 트립니다. 이젠 말세 끝에서 태평신대로 가야 할 시국입니다. 사회주의+자본주의=공존공영 중산주의!!!

  • @user-zi3bk4dq4i
    @user-zi3bk4dq4i 3 년 전 +1

    의자 만드는 회사에서 왜 아직 '의자왕' 이라는 상표를 만들지 않나?

  • @user-gp2dq8ke4v
    @user-gp2dq8ke4v 3 년 전 +3

    이내용 다 거짓말이 80프로다 ㅋㅋㅋ
    의자왕은 부하의 배신으로 잡혔다

    • @user-nn6dw9vv1n
      @user-nn6dw9vv1n 3 년 전 +3

      ? 7시의 뒷통수가 이때부터 유래된거군요...

  • @yoojustice
    @yoojustice 3 년 전 +11

    일본은 백제가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한듯ㅎㅎ

    • @japanchina3298
      @japanchina3298 3 년 전

      독도가 일본땅이면? *독도를 포함한 일본 열도는 우리의 한반도 선조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땅이다!!!
      *애초부터 일본 열도는 고대 한반도 *백제와 가야 *도래인 조상들의 시작으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현 시대의 문명 국가를 탄생시킨 땅이다.
      즉, 일본은 *원래 우리 한반도 대한민국 *소유의 진정한 주인 땅이며, 이는 틀림없이 명확히 *역사과학적으로 증명된 기록이다!!!

    • @user-vo7jg2yd6k
      @user-vo7jg2yd6k 2 년 전

      @@japanchina3298 ㅇㅉㄹㄱ

  • @byungkikim2596
    @byungkikim2596 3 년 전 +5

    백제는 내부분열로 망했지..백제 왕족들은 만주족이라 지방토착세력과 통치내내 불협화음이 있었어..ㅋㅋㅋ

  • @user-lr3nl5kw1i
    @user-lr3nl5kw1i 3 년 전 +2

    지금 사람을로서 백제인이니 신라인이니 고구려인이니 하는 것은...
    맹신, 정확한 근거를 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 @tv.2745
    @tv.2745 3 년 전 +6

    의자는 예식진이한테 배신당했지.
    더러운 덤테기 다쓰고 !

  • @user-wg3ul8tl4q
    @user-wg3ul8tl4q 3 년 전 +2

    서동""무왕""왕자 과 선화공주
    아들의자왕 과 손자의 부여융
    공산유적(웅진)645 의자왕피신처
    660.08.02사비성 소정방ㆍ김춘추
    앞에서 의자왕의 항복선언배 하다

    • @user-wg3ul8tl4q
      @user-wg3ul8tl4q 3 년 전 +1

      당나라ㆍ모사꾼의 신라 김춘추 연합군 의해서 700년역사 660년 신라에게 무너지다

  • @byungmochoi2390
    @byungmochoi2390 3 년 전 +1

    마약 범죄 쫓아서 일당들
    모두 잡아들여라

  • @user-wx6ut6em3w
    @user-wx6ut6em3w 2 년 전 +2

    평화

  • @gogoyogi5377
    @gogoyogi5377 3 년 전 +4

    가묘까지 있는거보면 폭군은 아니었나보네

  • @luisj.9185
    @luisj.9185 3 년 전 +16

    일부러 쌈싸먹으려고 사비성 비우고 웅진성으로 간건데 웅진성주의 통수로 의자왕이 잡혔음 아무설명없이 그냥 항복했다니요 여기까지 볼께요 ㅉㅉㅉ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3 년 전 +3

      쌈싸먹긴 커녕 기벌포에 상륙하는 당군을 막지 못했고 의직을 막으러 보냈다가 패하고 의직 자신도 전사하고 도성 30리 밖에 온 나라안의 군사들을 긁어모아서 여섯군데 진을 치고 당군을 막았는데 그것도 대패하고 그러자 왕자에게 도성 맡기고 의자왕 본인은 공주로 튀고 이건 그냥 정신줄 놓은 상황입니다. 공산성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호왈 13만이라는 당군의 포위공격을 견딜수 있는 성이 절대 아닙니다. 의자왕이 좀더 현명했더라면 당군이 상륙하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고 너른 들에서 당군과 회전을 하지 말았어야 하며 청야를 할거면 공산성이 아니라 차라리 칠갑산이나 오서산 같은 산악지역으로 갔어야 그나마 견딜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의자왕의 실정도 분명 백제멸망의 한 원인인 것입니다.

    • @scap4437
      @scap4437 3 년 전 +1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전라도는 백제가 아닙니다
      전라도는 6세기까지 독자세력을 유지하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동성왕 무령왕때에도 여러차례 전라도 정벌의 기록이 있으며
      백제 말기에 식민지 형태로 복속되었을뿐
      벡제인의 정체성은 한번도 가진적 없던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왜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만 있다는것이 그 대표적 근거죠
      백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고 많이쳐줘봤자 익산까지이며
      그 밑 전라도는 백제인의 정체성과 다른 지역입니다
      정작 충청도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유독 전라도 사람이 스스로 백제인이라고 우기는거 보면 너무 웃기길래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 @user-zh2hi9rx7t
      @user-zh2hi9rx7t 2 개월 전

      의자 부여 신 내가 도울수 있는데 산왕으로 임명해 주면 내가 도울수 있소. 의자 지금 천국서 내글 보고 연락 주시오. 광주서 다시 시작합시다. 그리고 다시 사비로 옮깁시다. 찾아주오. 저주가 다 풀리길 바라나이다. 의자, 다시 도전하십시요. 그까이꺼 다시 시작해서 민심을 얻으소서. 삼신께 귀의하소서. 패망업이 커 죄가 크옵니다. 하오나 천손입니다. 죄를 빌고 다시 시작하죠. 자신감을 가지소서. 백성은 의자를 사랑합니다.
      의자 할수 있소. 삼신께서 어찌 미워하 하겠소. 의자 능력 있소. 성충이 있고 계백이 있소. 나라는 곰이 지킬 것이니 편안함이 많소.

  • @saladin4491
    @saladin4491 3 년 전 +7

    일본서기 주장을 그대로 참고한 것도 보이네요.
    타국 왕을 목메어 관청바닥에 묻는 행위는
    일본같은 나라나 하는 짓이지
    신분제가 철저한 당시 삼국시대에 타국왕이라도 대접을 해주는게 보통인데
    거기다 성왕의 공주가 진흥왕에게 시집까지 간 마당에
    그렇게 했다는건 말이 안되죠.
    전멸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패했다는 것만 봐도
    난전중에 사망했다는 게 맞는거 같습니다.

    • @user-gf2lb1zy9o
      @user-gf2lb1zy9o 3 년 전

      일본서기가..우리 삼국사를 왜곡하는 사료도 보이긴 하나, 참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무조건적인 참조가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사료들을 철저히 교차검증해서 결론 내립니다

  • @user-wv3xf7jl4y
    @user-wv3xf7jl4y 3 년 전 +13

    의자왕은 진짜 성군이자 훌륭한 임금이었다.

    • @kyucho3251
      @kyucho3251 3 년 전 +3

      맞아.

    • @user-hh8od9zs6c
      @user-hh8od9zs6c 3 년 전

      그러나 예식진은 당나라에 의자왕을 항복시킨 배신자다

    • @user-wn1pc3hy2y
      @user-wn1pc3hy2y 3 년 전 +2

      독립운동가겸 역사가로 유명하신 단재 신채호선생님께서 하신말씀 : 김춘추와 김유신이 외세를 끌여들여 우리형제국가를 친 죄는 용서할수없다 이들이 설령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를 되찾고 더나아가 중국본토까지 우리땅으로 만들었다고 치더라도 이들의 죄를 용서할수 없을진데 작금의 학자들이 이들을 통일의 영웅이라 칭송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 @user-gf2lb1zy9o
      @user-gf2lb1zy9o 3 년 전

      @@user-wn1pc3hy2y 신채호의 사학은 지나치게 편협하고 교조주의적이며, 부정확한 사료 분석 및 자의적이고 왜곡된 해석 등으로 비판받고 있기 때문에 사학자로서의 주장은 대부분 한국 사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 @user-gf2lb1zy9o
      @user-gf2lb1zy9o 3 년 전

      @@user-wn1pc3hy2y 신채호는 신라를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24] 백제와 고구려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문제는 백제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이 개인적인 감정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이런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자신이 상상했던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저서에 적었다는 점이다.
      한때 교과서에 수십 년 동안 실려 있었던 백제의 산동반도 진출설도 사실은 정인보와 신채호의 사적인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수준으로 쓴 것인데 과거 역사학계가 신채호를 맹목적으로 높이 평가하던 시절에
      '신채호 선생이 이렇게 쓴 데에는 분명히 무슨 근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교과서에까지 수록해버린 것이다.
      이후 오랜 재검증 결과 아무리 찾아봐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현재는 완전히 부정되고 있으며 교과서에서도 삭제되었다.

  • @user-bc8dl3be6d
    @user-bc8dl3be6d 3 년 전

    강호순이가 부여야 공주야

  • @user-pm3pl8um8w
    @user-pm3pl8um8w 3 년 전 +1

    배쩨 벤취왕

  • @user-lr5bj1cp3h
    @user-lr5bj1cp3h 3 개월 전

    끌려간 58 일 이란기록 근ㄱㅓ 이디에 잏나? ㅡㅡ하루반인데

  • @cjoan9728
    @cjoan9728 3 년 전 +2

    의롭고 자애로운 왕이라서 의자왕이라고 하던에요.

  • @user-ms8zr7dx9s
    @user-ms8zr7dx9s 3 년 전 +2

    이 방송은 백제 맨들기 고생하시네

  • @user-jg7ov7sc5c
    @user-jg7ov7sc5c 3 년 전

    절대 방송은 왕옆에 눈과귀가되는 정치인 잘못은 일언반구 안하는구나 정치인 비하는 금기사항이야?

  • @user-if9co3nk5d
    @user-if9co3nk5d 3 년 전 +7

    아니 신라가 데려갔어야지 왜 당나라가 데려간거야 김춘추가 나쁜놈이야

    • @user-yy6gv6bg6i
      @user-yy6gv6bg6i 3 년 전 +2

      당시 신라신분이 당나라노예였음 ㅠ

    • @user-cl8kr3jq2u
      @user-cl8kr3jq2u 3 년 전 +1

      당나라가 제일 큰 전리품을 신라에 양보할리가 없지.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3 년 전 +1

      신라로 갔으면 최소 사약드링킹 입니다.........ㄷㄷㄷ

    • @user-hh8od9zs6c
      @user-hh8od9zs6c 3 년 전

      @@American-drone 그렇죠

    • @user-hh8od9zs6c
      @user-hh8od9zs6c 3 년 전

      @@American-drone 김춘추 사위 김품일이랑 딸을 참수했으니

  • @user-lr2jk2su4m
    @user-lr2jk2su4m 3 년 전 +7

    역사 조작하지 마세요.....
    세종실록에도 평양이 어딘지 모른다고 써있습니다.
    즉, 세종당시의 조선에 평양이 없다는 얘기입니다...지금 평양은 세종때 정한겁니다.
    알려진 평양만 7군데입니다.....평양은 수도 라는 일반명사입니다.

    • @nature5120
      @nature5120 3 년 전

      세종실록 몇년 기사예요?
      좀 찾아보려구요

    • @user-lr2jk2su4m
      @user-lr2jk2su4m 3 년 전 +1

      @@nature5120
      고구려 평양성의 위치는
      중국 요녕성에 있었다...라는
      중앙일보 신문기사 먼저 소개합니다.
      news.joins.com/article/17932613
      다음은 원사 지리지에 나오는
      글입니다.
      東甯路 本高句驪平壤城,亦曰長安城。漢滅朝鮮,置樂浪、玄菟郡,此樂浪地也。
      晉義熙後,其王高璉(장수왕)始居平壤城。
      唐征高麗,拔平壤,其國東徙,在鴨綠水之東南千餘里,非平壤之舊。
      至王建,以平壤為西京。
      - 元史 지리지2
      동진 의희(연호) 이후, 고구려 장수왕 이 처음으로 평양성에 거했는데,
      당나라가 고려(고구려)를 정벌한후, 그 영역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압록수의 동남 천여리로 이동했는데, 옛 평양은 아니다.
      (고려왕)왕건 때에 이 평양을 서경으로 삼았다.
      현재의 압록강 - 평양거리는 200 km 미만이고요. 500여리 정도 됩니다.
      1000리 떨어져 있지 않아요.
      압록수도 현재의 위치가 아니죠.
      난하에서 서남쪽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압록수 라고 적혀있죠.
      현재의 압록강이....
      어떤 강의 지류 이던가요?...아니죠.
      이 평양성도....원래의 평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장수왕이 천도한 것이니까.
      --- 세종실록에서 ---

      정사를 보았다.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계하기를,

      "삼국(三國)의 시조(始祖)의 묘(廟)를 세우는데 마땅히 그 도읍한 데에 세울 것이니,
      신라는 경주(慶州)이겠고, 백제는 전주(全州)이겠으나,
      고구려는 그 도읍한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상고해 보면 알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록 도읍한 데에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각기 그 나라에 세운다면 될 것이다."
      하였다.
      이조 판서 허조(許稠)가 계하기를,
      "제사 지내는 것은 공을 보답하는 것입니다.
      우리 왕조(王朝)의 전장(典章)·문물(文物)은 신라의 제도를 증감(增減)하였으니,
      다만 신라 시조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삼국이 정립(鼎立) 대치(對峙)하여 서로 막상막하(莫上莫下)였으니,
      이것을 버리고 저것만 취할 수는 없다." 하였다.
      (중략)
      이렇게 해서 임금이 조선의 강역에 평양의 위치를 정하고
      묘를 세워 제사를 지내게 된 것입니다.
      즉, 장수왕의 평양성도...지금의 평양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그 평양성.안시성이 다 만주에 있습니다.
      처음 중앙일보 기사글에 보면
      지도가 나오는데
      그게 조선중기의 지도입니다.
      그때의 평양위치가...지금의 평양위치죠.
      세종실록의 기사 위치는 모르겠으니
      님이 직접 함 찾아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 @nature5120
      @nature5120 3 년 전

      @@user-lr2jk2su4m 백제가 전주라니? 후백제를 말하는거 같은데
      후삼국을 말할거 같으면 고구려의 수도는 개성이 되겠지요
      백제의 수도도 모르는데 고구려의 수도를 알리는 만무하고
      저도 평양성이 몇군데 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백제가 371년 고구려를 공격해서 고국원앙을 죽인곳이 평양성인데
      평양성 위치가 중앙일보 기사에 나오는 곳이라면 꼬여도 상당히 꼬이는데요?

    • @user-lr2jk2su4m
      @user-lr2jk2su4m 3 년 전

      @@nature5120
      우리 역사서를 다 없애 버렸으니
      그 역사를 찾는데...중국사서의 기록을
      참고할수 밖에 없습니다.
      왜 기를 쓰고....한국 역사책을 없앴을까요?
      다만....
      지금의 역사는...일제가 조작해 만든
      그런 역사라는 거죠.
      지금 있는 내용이..맞지가 않아요.
      하나씩 퍼즐을 찾아 나가야합니다.
      지금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되죠.
      하다못해
      한사군의 낙랑군땅에 패수가 흐르는데
      발원지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다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고 써있습니다.
      그게 왜 청천강입니까?
      청천강은...서쪽으로 흐르는 강인데.
      대한민국에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이 있습니까?
      그런 강줄기는...북경부근에 많이 있습니다.
      물론...일본도. 중국도
      자기네 사서쓸때 지들 유리하게 씁니다.
      그래서 더 수수께끼 같지요.
      그 틈새를 비집고..진실을 찾아가야 합니다.
      임나의 북쪽은 바다에 접해있다.
      이게 일본서기의 기록입니다.
      임나가 한반도 남부지방이 될수가 없죠.
      그런데...그렇게 일본이 주장하는대로
      중국이 주장하는대로
      그걸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쳐죽일 놈들입니다.
      사서에 대한 검증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컴퓨터. 인터넷...세상 참 좋아졌네요.
      거짓말을 할수가 없게 되었으니.....

    • @nature5120
      @nature5120 3 년 전 +1

      @@user-lr2jk2su4m 말을 하실때는 피해의식은 최대한 숨기고 말씀하세요 ㅋㅋㅋ
      참 안타까운게 한국인은 역사로부터 피해의식과 증오심만 배운다는것입니다
      물어보지도 않은 일제가 어쩌고.. 중국이 어쩌고.... 임나일본부가 어쩌고....이런 얘기는 갑자기 왜 나오는건지? ㅋㅋㅋ
      제가 묻고 싶은건
      백제가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국원앙을 죽인곳이 평양성인데
      님 생각은 어떤가 하는것입니다
      백제가 요동만주 지역까지 진군하여 고국원앙을 죽인거라고 생각하시나요?

  • @user-vg7jc7hy6z
    @user-vg7jc7hy6z 8 개월 전

    #800#> 예수님다시오시기까지 660년기다리면서 부활조까지 그려가며 나라만들어 지켰는데
    저때 미역국땅은 원주민들이 말타고 버팔로간빼먹던시절

  • @user-zr7ri5ht6z
    @user-zr7ri5ht6z 3 년 전 +4

    백제의 멸망은 신라의 교활함 이였다

    • @zzohhodduoccohlh3493
      @zzohhodduoccohlh3493 7 개월 전

      외교가 원래 다그럼 그리고 내부적으로 말년의 실책과 배신자때문에 멸망했고 특히 당나라와 신라를 상대할때 어딜먼저 막아야할지 정할때 옥에갇힌 성충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게 치명타였음 신라가 백강을건너지 못하게 막아야했는데

    • @Silla__Kim.Yu-shin
      @Silla__Kim.Yu-shin 5 개월 전

      백제의 멸망은 형제 고구려와 다투다 다시 손잡고 신라를 공격한 대가이다

  • @user-fn8be8df2h
    @user-fn8be8df2h 3 년 전 +3

    신라가 간신이었네요

  • @user-sj5ki3hf8t
    @user-sj5ki3hf8t 3 년 전 +1

    의자왕 얼마나 의자에 많이 앉았을까....

  • @user-vr1lx1ti2i

    충신 성충 흥수를 멀리하고 간신 임자와 은고라는 계집에 눈이 먼 죄지

  • @KING-vt5zl
    @KING-vt5zl 년 전

    아?백제! 삼천궁녀는 애국자녀다.당나라의 개?가되는니?차라리 죽음으로 지킨다 .이게핵심팩트다~

  • @user-oi7cz7fl2u
    @user-oi7cz7fl2u 3 년 전 +2

    뭔 3천 궁녀냐? 어떤 자식이 확인없이 노래로 만드냐 사자 명예훼손이다. 그만해라.

  • @yrkim3018
    @yrkim3018 3 년 전 +8

    내가 의자왕이라면 개억울할듯 시발 3천궁녀 먹기라도하면 덜억울하지 ㅋㅋ

  • @user-eo3re9hq9c
    @user-eo3re9hq9c 3 년 전 +5

    잘 못된 역사 백제가 신라을 쳐서야 했다.

    • @user-wn1pc3hy2y
      @user-wn1pc3hy2y 3 년 전

      동감합니다 더러운 신라놈들 여기저기 신라빠는놈들보면 답답합니다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년 전

      백제는 수차례 한반도에 왜구를 끌여들여 신라를 쳤습니다

    • @user-gf2lb1zy9o
      @user-gf2lb1zy9o 3 년 전

      @@user-wn1pc3hy2y 의자왕대에는 말갈까지 끌어드리는데 아시죠?

    • @user-zh2hi9rx7t
      @user-zh2hi9rx7t 2 개월 전

      탄현에 군사 두라니 안하되 웅진의 진힘이 솟아 오르는 것을 봐야 했는데, 다시 대방을 되찾고 말이야, ㅎㅎ
      성총의 말을 백성과 부여 융(계백 상대등)께서 들으셔야 했어 백성이 지지했어야 했지 태만한 것이야, 교육은ㅁ백성이 담당하는데 오늘도 뉴스로 보면 국가정책 알려주고 여야 찬반 토론 하잖아 똑바로 가르쳐 주는데 지지 안하니 성충의 계책이 20년간 하루도 아니고 기회가 여러번 있던 시간이야, 그러나 민중은 지지를 안했어 그게 큰실수야, 분명 탄현이 맞아,

  • @user-oo8gn4wj1y
    @user-oo8gn4wj1y 3 년 전

    좀너무간다

  • @kmyungsic
    @kmyungsic 3 년 전

    일본이 시멘트를 발라서 훼손시킨게 아니라 복원하려고 한 겁니다.
    시멘트?? 당시 가격은 고가였어요...^^

  • @user-mp4vi7oy6t
    @user-mp4vi7oy6t 3 년 전 +6

    아마도 궁안에 의자가 수천개는 됐을거라 생각합니다

    • @polyonomata
      @polyonomata 3 년 전 +2

      걸상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조선시기에 온돌이 보편화될때까진 우리나라도 입식생활이었다니 사비궁에 의자가 많긴 했을겁니다

    • @beun7931
      @beun7931 3 년 전 +4

      진지하게 묻습니다 혹시 개그입니까

    • @user-rw1qe8qh1w
      @user-rw1qe8qh1w 3 년 전 +1

      존나 귀여워~ ㅋ

    • @user-yq3sb9ud2m
      @user-yq3sb9ud2m 3 년 전

      초기에 의자왕은 해동증자로불리며 백제를튼튼하게했는데 지나친자신감과 안정속에서 초심을 잃었고 분별력을상실했겠지 주변의간신들의말에 휩쓸렸겠지

    • @user-qq3qg2oh4z
      @user-qq3qg2oh4z 3 년 전 +1

      의리있는 자 라 해서
      의자왕입니다.
      체어의 그 의자 아닙니다.

  • @soonchanghong3616
    @soonchanghong3616 3 년 전 +7

    잘못해석된 백제역사를 또다시 반복하는군요. 부여지방에 남겨진 흔적들은 위 내용과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데.....

  • @user-ts7rq1sf5j

    당나라를 끌어들인 나쁜 신라 같으니라고!

  • @user-ji4gl4fr8w
    @user-ji4gl4fr8w 3 년 전 +3

    정치인은 모든 것을 결과로 말하지!
    말은 바로하자!
    걸상왕!

  • @kimmingu100
    @kimmingu100 3 년 전 +1

    궁녀가 3천명이나 될 정도로 국력이 강성했다고 해석할수 있지 않을까?

    • @user-mp4fd2to4l
      @user-mp4fd2to4l 3 년 전 +2

      백제가 그런정신의 나라였다면 그많은 담로들을 지닌 제국이될수가없습니다 그것은 백제공격을 정당화시키려는 훙노신라세력의 의도된 역사왜곡짓거리인것입니다 정신바로차라고 역사를 공부하세요

    • @user-mp4fd2to4l
      @user-mp4fd2to4l 3 년 전 +1

      그들경상도의 그들세력이 익산의 미륵사지 서쪽탑도 촟아와서 깨부셨다네요 아직도 그들세력의 잔존들이 중국과 일본과 손잡고 기승을부리며 안하무인 실존하고있어요

    • @kimmingu100
      @kimmingu100 3 년 전

      @@user-mp4fd2to4l 궁녀의 개념이 지금과 다를 수도 있고 진정 백제가 22담로를 갖춘 해양 제국이었다면 오히려 그 국력에 걸맞는 숫자일것 같은데.. 개인적 견해입니다!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3 년 전 +1

      @@kimmingu100 낙화암에 삼천명 올라갈 자리도 없습니다.

    • @user-zh2hi9rx7t
      @user-zh2hi9rx7t 2 개월 전

      의자왕 그시녀 나 둘만 주라. 그럼 내가 해결해줄께 의자 듣고 있소. 성 암 산 여기서 기다릴께 빨리 내려와 다시 사비에 백제 세우자.

  • @user-pu8pn4sy6m
    @user-pu8pn4sy6m 3 년 전

    역사왜곡 역시나 징하구나
    일본은 백제다 백제는 곧 일본이다

  • @user-qv4lp2td8x
    @user-qv4lp2td8x 3 년 전 +3

    왕까지 했으면 자결하고 말지. 수모를 당하면서 살려고 끌려가냐.

  • @byungkikim2596
    @byungkikim2596 3 년 전 +2

    백제의 뿌리를 찾으려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찾아라...ㅋㅋㅋ

  • @user-fi2hm2yd5d
    @user-fi2hm2yd5d 년 전 +1

    신라의 삼국통수로 만주의 드넓은 땅을 잃어버리고 고구려와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구나

    • @Silla__Kim.Yu-shin
      @Silla__Kim.Yu-shin 5 개월 전

      허허벌판 만주 가져서 뭐하게? 지금 북한 꼬라지도 해결 못하는데 같은 민족이니 영토이니 뜬구름 잡는 소리하고 있네 애초에 고겨루 백제 두형제 싸움으로
      한반도가 개판된거지 그걸 해결하고 한민족 만든 게 가야+신라고

  • @deutschland7188
    @deutschland7188 3 년 전 +15

    "의자왕이 궁인과 함께 음란과 향락에 빠져 술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

    • @user-yq3sb9ud2m
      @user-yq3sb9ud2m 3 년 전 +3

      무조건적 고구려빠들 고구려의실체도제대로함보고 비판할건하고 해야되는데
      고구려찬양하면반드시따라오는거
      신라비판

    • @user-yq3sb9ud2m
      @user-yq3sb9ud2m 3 년 전 +1

      또한가지골때리는게 솔직히5세기전까진삼국이 국가체계가갖추어진건아니지않는가
      그리고평양성이평양에있었지그럼어느곳에있었는가 중국중원에있었나?? 또백제22담로설을 무조건맹신하는것은 병이다병

    • @deutschland7188
      @deutschland7188 3 년 전 +2

      @@user-yq3sb9ud2m 정신병자는 좀 꺼져라

    • @user-yq3sb9ud2m
      @user-yq3sb9ud2m 3 년 전 +1

      @@deutschland7188 미친쌔까또라이역사를너거멋대로해석하네 환빠들이 너거보다낮다

    • @user-yy6gv6bg6i
      @user-yy6gv6bg6i 3 년 전 +2

      @@user-yq3sb9ud2m 고향이...ㅋㅋㅋ
      99.999%ㅋㅋㅋ 이거슨 과학임ㅋㅋㅋ

  • @user-gz9zs2qb4w
    @user-gz9zs2qb4w 3 년 전 +2

    한심한 댓글들이 많이 보이네요. 아무리 신라가 고구려 뒤통수치고 중국과 손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그당시 신라가 망했으면 한반도는 중국 놈들 땅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user-oj7qy9tz8m
      @user-oj7qy9tz8m 3 년 전 +3

      정말 흉노새끼대운 댓글이군

    • @user-cl8kr3jq2u
      @user-cl8kr3jq2u 3 년 전 +3

      엥? 무수 소리요?

    • @Silla__Kim.Yu-shin
      @Silla__Kim.Yu-shin 5 개월 전

      연남생 사건 모르나? 신라 아니 었으면 고구려는 중국한테 멸망 @@user-cl8kr3jq2u

    • @user-zh2hi9rx7t
      @user-zh2hi9rx7t 2 개월 전

      시민들 당시 신라 우습나요? 신라신국이요. 당서에 천신이 나타나 김유신은 신라의 성스런 신하라 했소. 중국 천신도 언급했을 만큼 신라는 강성하고 영리한 화랑이 많았죠. 시민들 성충의 말처럼 탄현이외다. 오직 그시기는 계백.의자가 뭐하고 뭐하고 시간이 촉박합니다 당시 탄현 뿐이요. 국력이 신라 당으로 많이 기운듯 하나 탄현은 웅진 근처에 있어 의지할수 있는 곳이요. 이곳은 나당을 지킬수 있소. 지금 공부 그리 가르치지 민중이 교육담당해야지요.

  • @terry7610
    @terry7610 3 년 전 +1

    의자왕은 전략가이며 위대한 왕이었음,,, 청야전술로 나당연합군은 위기에 처혔으나,,, 당시 의자왕이 있던 성주가 배반을 하고 왜에 있던 부여풍의 성급한 공격으로 폐하고 왜로 물러감 당시에 점령된 몇몇의 성을 빼고 대부분의 성들은 무너지지않았음,, 부흥군의 대장을 부여풍이 죽이고 청야전술을 안 따르고 성급히 공격 후 실패,,,

    • @terry7610
      @terry7610 3 년 전 +1

      역사를 아주 개차반으로 만드네,,당시 백제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였음,,, 고구려와 맞짱 뜨던 나라였는데,,, 22담로를 거느리는 위대한 왕국이었음,,,

    • @user-zh2hi9rx7t
      @user-zh2hi9rx7t 2 개월 전

      존속 부실로 몰락이니 백제 당시 백성들이 반성 많이 해야 하고 하늘삼신께 참회하고 선행을 부디 많이 닦으시게 무왕ㅡ 마를 캐던 아이는 고통을 참아 사비민가서 오래 버티니 사비를 백제를 백성을 지키려는 마음과 의지를 길렀다 이런 뜻이 크니 나라를 잘지켰다.

  • @user-je5yg4nk1l
    @user-je5yg4nk1l 3 년 전 +3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작전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신변안전과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