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6. (묵상)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부자들(약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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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일 2024. 03. 14.
  •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부자들(약 2:5-7)
    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6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제하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또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7 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5 Listen,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Has not God chosen those who are poor in the eyes of the world to be rich in faith and to inherit the kingdom he promised those who love him?
    6 But you have dishonored the poor. Is it not the rich who are exploiting you? Are they not the ones who are dragging you into court?
    7 Are they not the ones who are blaspheming the noble name of him to whom you belong?
    지난 앞 본문의 묵상에서 야고보는 교회 내에서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부한 자들을 우대하는 태도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야고보는 교회 안에서는 모든 자들이 한 형제 자매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서 모두가 귀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야고보는 오늘 본문부터 13절까지의 성경 말씀에서 가난한 자들과 부유한 자들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교회가 왜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일단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이든 부한 자이든 간에 그들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주권으로 택하셔서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수 있도록 하셨다고 전제합니다. 특히나 그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가난한 자들을 부르신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과 택하심에 의해서 그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셔서 부르신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겼다고 합니다. 부자들은 조금만 마음이 틀어지면 재력으로 그들의 변호인을 사서 상대방으로 법정으로 끌고가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유이지만 법에 대한 이해가 없고 법적으로 도와 줄만한 사람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을 유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특히나 당시 사회에서 부자들이었던 사두개인들은 사회의 엘리트 층으로서 성전과 관련된 이권을 가진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이 그들의 돈을 빌려가 갚지 못하면 가난한 자들의 옷깃을 잡고 법정으로 끌고가기가 일쑤였습니다. 당연히 법은 사두개인들의 편이었습니다. 당시 높은 고리대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 지고 부한 자들은 더 부해지는 빈인빈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재정적인 고통과 빚의 늪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뾰족한 방법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야고보는 그런 가난한 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야고보서에서 '시련'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모든 어려움의 중심에는 부자들의 횡포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7절에서는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이 부자라고 합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번역하고 있고, 새번역 성경에서는 '존귀한 이름'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간접적으로 표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해서 사용했던 이 호칭을 야고보는 그들을 구원하신 예수님께 적용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아름다운 이름' 혹은 '존귀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아마도 야고보서를 수신하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많아서 이런 호칭에 대해 익숙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욕하는 사람 또한 부자들이라고 언급합니다. 아마도 부자들이 그들의 자신감을 내세워 예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멸시했던 것 같습니다. 야고보는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이 부자들인데 교회 내에서는 왜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부자들을 우대하려고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죠.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교회가 가진 한계에 대해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몸으로 수많은 지체들이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그 몸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적인 몸을 입고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사회에서 필요한 지식을 얻어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내에서도 세상의 가치 기준과 시각으로 판단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올바르지 못한 시각을 제거하고 신앙과 믿음의 본질을 세우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 가운데 이루어 가는 것. 이것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항상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되게 변화시켜 가도록 노력하는 것을 주님께서 더 귀하게 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나를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하루 되시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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