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이물질' 투수들은 왜 침을 바를까? 스핏볼/머드볼/에머리볼/파인타르 [야그알]

공유
소스 코드
  • 게시일 2021. 04. 07.
  • [글/영상=스포츠서울 배우근기자]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 선생은 후학을 위한 수양서인 사소절(士小節)을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예절과 수신에 대한 교훈을 설명했는데, 교습(敎習) 편에서 책을 읽을 때 손가락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책을 아껴 보라는 의미인데, 이는 책뿐 아니라 화폐를 셀 때도 통용되는 예절이다. 여기엔 위생상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운드 위 투수는 사방의 카메라가 찍고 있는데도 상관없이 손가락을 혓바닥에 대며 연신 침을 묻힌다. 손맛을 보는 것은 아닐 테고 ‘왜’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책장(冊張)을 넘길 때 손가락에 침을 바르면 페이지가 손가락 끝에 붙어 착착 잘 넘어간다. 손가락과 책이 조금 더러워지는 단점은 있지만 말이다. 야구공을 던질 때도 책장이 손에 착 붙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 생기는 걸까. 알고 보면 그 반대 효과가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20세기 초반까지 메이저리그에서는 스핏볼(spitball) 전문 투수가 있었다. 스핏(Spit)은 ‘입에 들어 있는 음식이나 침을 뱉는다’는 뜻으로, 스핏볼은 투수가 공에 침을 발라 던지는 투구를 말한다. 투수가 공에 침이나 바셀린처럼 미끌거리는 물질을 발라 패스트볼을 던지면 회전이 상대적으로 덜 걸리는데, 그러면 공은 직구처럼 반듯하게 날아가다가 홈 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지는 궤적을 그리게 된다. 일종의 포크볼이나 너클볼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921년부터 스핏볼을 금지했는데, 그 이유는 부정 투구 논란과 위생 문제였다. 그해부터 모든 스핏볼을 일제히 금지하진 않았고 이전까지 스핏볼을 던지던 투수 17명의 투구를 인정하며 순차적으로 사라지게 했다. 한 번에 밥줄을 끊지 않는 여유를 준 것이다. 스핏볼러는 마지막 스핏볼 투수인 벌레이 그라임스가 1934년에 공식 은퇴하며 야구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스핏볼을 금지하며 발생한 긍정적 효과도 있었는데, 바로 커브, 슬라이더 등 변화구의 발전이 그것이다. 그런데 투수들은 요즘도 자신의 손가락에 열심히 침을 묻히고 있다. 그렇다면 여전히 스핏볼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야구 규칙 8.02를 보면 투수가 투수판을 둘러싼 18피트(5.486m)의 둥근 원 안에서 투구하는 맨손을 입 또는 입술에 대는 행위, 또는 공과 손 또는 글러브에 침을 바르는 것을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다. 만약 그 규정을 어기면 심판은 볼을 선고하고 투수에게 경고를 하며 반복 시에는 그 투수를 퇴장시킨다. 이처럼 투수가 손가락에 침을 바르는 행위는 확실한 금지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투수들이 손가락을 혓바닥에 대며 침을 바르는 건, 예외 사항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투수들의 행동을 보면 마운드 아래에서 손가락에 침을 묻힌 후 유니폼에 쓱쓱 닦고 나서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운드 위에서는 안 되지만, 마운드 아래에서는 침 바르기가 가능하다(실제로는 투수판을 밟은 채 침을 바르는 경우도 많다).
    여전히 투수가 침을 바르고 있는 건 스핏볼을 던지기 위해서가 아닌, 피부 보호가 진짜 목적이다. 회전을 주기 위해 공을 채는 손가락 끝은 순간적인 마찰 때문에 쉽게 건조해진다. 투수들은 일종의 보습을 위해 화끈 달아오른 손가락을 혓바닥에 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투수뿐 아니라 타자 중에도 자신의 침을 기꺼이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타자는 대기 타석에서 방망이 손잡이 부분에 스틱 형태로 생긴 끈끈이를 바른다. 그곳에 배팅 장갑을 대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타격할 때 미끄러지지 않게 잡아준다.
    몇몇 타자는 장갑을 낀 손바닥에 침을 딱 뱉어 방망이를 잡기도 하는데, 그러면 더 잘 달라붙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장갑을 끼지 않는 메이저리그 타자 중에도 그런 습관을 가진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마치 스킨로션을 바르듯 침이 묻은 손바닥을 탁탁 몇 번 치고 나서 방망이를 꽉 잡고 타석에 선다.
    사실 철봉에 매달리거나 방망이를 오달지게 잡기 전에 손바닥에 침을 퉤퉤 하고 뱉는 행동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사람의 타액에는 당단백질의 일종인 뮤신이 포함되어 있다. 뮤신은 점막에서 분비되는데 점성이 있어 타액을 끈끈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다. 즉 침을 바르면 냄새는 좀 날 수 있지만, 점성이 있어 어느 정도 끈끈이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침을 뱉는 게 그리 아름다운 행위는 아니다. 사람들은 침에 대해 더럽고 불결하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싫어하거나 경멸하는 대상을 향해 “침을 뱉고 싶다”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할까. 그러나 사람의 침 분비액 자체는 무색무취하고 본질적으로 깨끗하다.
    침의 99.5%는 수분이고 나머지는 아밀라아제나 리파아제와 같은 각종 소화액으로 이 성분들은 건강을 지키는 필수 요소다. 손바닥에 침을 좀 바른다고 더럽다고 생각할 필요까진 없다는 것이다. 타액은 독성 제거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침에 냄새가 나는 이유는 입안에 있던 음식물 찌꺼기나 세포의 각질, 가래 등이 섞이기 때문이다.
    야구 선수들은 침을 손가락이나 방망이 손잡이에 바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라운드에 침 뱉는 행동을 훨씬 자주 보여준다. 코트에서 뛰는 농구나 배구 선수들은 침을 거의 뱉지 않는데, 유독 야구 선수들이 빈번하게 침을 뱉는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종목과 달리 야구는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운동이다. 긴장의 순간이 계속 이어지다가 한순간에 힘을 줘야 한다.
    흥분이나 긴장을 하면 우리 몸의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는데 이때 땀이나 타액의 분비도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야구 선수의 입속에 침이 잘 고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기 중에 그라운드의 흙이나 먼지도 입으로 잘 들어오기에 꿀꺽 삼키기보다는 바깥으로 뱉는다고 한다.
    한편 스핏볼과 함께 금지된 반칙 투구 행동으로는 머드볼(mudball)과 에머리볼(emeryball)이 있다. 머드볼은 진흙(mud)을 묻혀 던지는 것이고 에머리볼은 샌드페이퍼와 같은 것으로 문질러 공에 상처를 내거나 표면을 거칠게 만드는 것이다. 에머리(금강사)는 재료를 갈거나 깎는 연마재로 사용되는 광물을 뜻한다.
    머드볼과 에머리볼은 불규칙적인 표면 때문에 일반적인 공의 움직임과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된다. 그래서 안타가 될 공이 빗맞아 뜬공이나 땅볼이 될 수 있다. 투수 입장에서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다면 자신감 상승에도 기여했을 것이다. 스핏볼이나 머드볼, 그리고 에머리볼 모두 투수가 타자와의 승부에서 승리하기 위한 별별 궁리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kenny@sportsseoul.com
    ▣ 스포츠서울 홈페이지
    ◇ www.sportsseoul.com
    ▣ 연관채널안내
    ◇ NAVER TV(Entertainment) : tv.naver.com/sportsseoul
    ◇ NAVER TV(Sports) : tv.naver.com/sportsseoul2
    ◇ V LIVE : channels.vlive.tv/B5F927/home
    ◇ Facebook : / sportsseoul1
    ◇ Instagram : / sportsseoul
    ▣ 영상 사용 및 제보 관련 문의 (스포츠서울 영상제작부)
    ◇ ssportsf@gmail.com
  • 엔터테인먼트

댓글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