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간 옛이야기 듣듯 정리하는 '고려 역사 5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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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일 2022. 05. 30.
  • #고려시대 #고려왕 #고려역사총정리
    한반도 중세의 문을 연 고려 이야기!
    15분 동안 약 500년 전체 흐름을 쭉 정리해보는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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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7K

  • @ttuii12345
    @ttuii12345 년 전 +267

    고려조 사극 드라마 시청순서
    태조왕건 -> 제국의 아침 -> 고려거란전쟁&천추태후 -> 무인시대 -> 무신 -> 신돈 -> 정도전&용의눈물(초반)

    • @user-lp3wr2ne5y
      @user-lp3wr2ne5y 년 전 +31

      번외로 보보경심 ㅎㅎㅎㅎ

    • @grandeurzz
      @grandeurzz 년 전 +6

      기황후 무시하노 이기

    • @ttuii12345
      @ttuii12345 년 전 +16

      @@grandeurzz 기황후는 아무래도 몽고 배경이라 제외했습니다. 신돈에도 기황후 나오긴 합니다.

    • @Praise_kim
      @Praise_kim 년 전 +16

      육룡이 나르샤도 좋은데...

    • @user-ek3dq9gz7b
      @user-ek3dq9gz7b 년 전 +2

      내가본 보보경심 기황후 육룡이나르샤는 왜없노

  • @Minerva908
    @Minerva908 년 전 +2326

    광종이 다 교통정리 해두고 뒤에 성군이 나오는건 역사의 진리인듯. 항상 불도저 군주가 나온 다음엔 그 자식들 중에 똑똑한 애들이 국가를 발전으로 이끌더라. 소수림왕-광개토대왕-장수왕, 광종-성종, 태종-세종

    • @CurryWurst19
      @CurryWurst19 년 전 +492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더럽혀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이걸 모두 해결해두면 후임이 일하기 편하죠.
      혹은 어쩌면 선대가 휘두르던 위압감에 대한 기억이 후대에의 훌륭한 협조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네요

    • @khkhlee404
      @khkhlee404 년 전 +307

      ㄹㅇ 나라의 틀을 잡은 후엔 성군이 많이 나오는 듯 백제 고이왕 근초고왕, 신라 법흥왕 진흥왕, 고려 광종 성종, 조선 태종 세종 세조 성종, 고구려 소수림왕 광개토대왕, 발해 문왕 선왕

    • @HBJR87
      @HBJR87 년 전 +63

      그런데 이 나라는 왜 이럼? ㅋㅋㅋ 이렇게 강하고 도덕이 넘치던 나라가 왜이리 자기네 나라 것도 아닌데 우기는 나라가 됬고(중국,일본) 정치인들끼리 싸우는 나라가 됬음 경제 빼면 후진국 인 이런 나라를 외국인들이 왜 좋아하는 지 이해가 안감

    • @user-ok8sw9vx4x
      @user-ok8sw9vx4x 년 전 +24

      광개토대왕-장수왕라인은 교통정리후 성군이 아닌거 같아요. 광개토가 일찍 죽는 바람에(이거 말고도 많은 이유가 있지만) 장수왕 초반에 국론 분열되고 내전했던걸 보면

    • @dlwlrma_solo
      @dlwlrma_solo 년 전 +25

      @@user-ok8sw9vx4x 소수림왕-광개토대왕 이죠..

  • @wincup
    @wincup 년 전 +468

    지방 호족들이 세던 시대고 사찰들도 막강한 자체 승군등 (정규군보다 더 센 적도 많음)이 있던 시대라, 사실 진짜 흥미로운 드라마나 영화소재가 많을 수 있는 시대인데 너무 조선시대처럼 묘사해서 아쉬움. 전혀 다른 감성과 마인드로 묘사할 수 있으니 앞으로 그렇게 좀 나와주면 좋겠네요.

    • @user-ws5wi9im3l
      @user-ws5wi9im3l 11 개월 전 +4

      사료가 부족함

    • @wincup
      @wincup 11 개월 전 +46

      @@user-ws5wi9im3l 무슨말씀인지 알지만, 적어도 고려사에서는 다룰 수 있다고 봅니다. 문화 미시사는 부족해도 삼국시대도 다루는 마당에 고려시대를 못다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네요.

    • @kidandRaftel
      @kidandRaftel 11 개월 전 +41

      ㄹㅇ 중세시대 그자체인데 너무 궁 위주로만 나옴

    • @remido9321
      @remido9321 11 개월 전 +19

      @@user-ws5wi9im3l 지금 님이 보는 조선 배경 역사도 고작 실록에 적힌 한 줄로 상상의 나래를 편 영화도 많음. 사료 부족이 아니라 그냥 작가 이해도와 수준이 못 미치는거지.

    • @user-ok8sw9vx4x
      @user-ok8sw9vx4x 11 개월 전 +4

      @@remido9321 조선은 야사가 많이 남아서 야사를 주제로 많이 만든것도 없지않아 있음. 정사만 보면 딱딱해서...

  • @user-ie5gc9zt8y
    @user-ie5gc9zt8y 8 개월 전 +1

    최고입니다. 재밌어어요❤

  • @user-oy9rq3xv3f
    @user-oy9rq3xv3f 년 전 +50

    이야..재밌다 한국사 준비중인데 정말 알차게 시청했습니다

  • @user-fs3co5is2e
    @user-fs3co5is2e 년 전 +18

    와 진짜 정리 짱이다!👍👍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사요는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을 치고 들어가 보십시오 원문공부하세여

  • @user-bt4gq7dw7v
    @user-bt4gq7dw7v 6 개월 전 +1

    귀에쏙쏙 들어왔어요^^

  • @Nurarihoon
    @Nurarihoon 6 개월 전

    쉽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KS_Knowlege
    @KS_Knowlege 년 전 +30

    역시 믿고 보는 채널입니다~~ 굿굿!

  • @user-sunflowerr
    @user-sunflowerr 10 개월 전 +10

    최고예요 진짜 제가 본 고려 역사 설명 영상 중 단언컨대 최고예요
    이런 식의 영상으로 조선을 정리해 놓으신 것도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요!❤ 사랑합니다 초면이지만

  • @user-df8me2cc4z
    @user-df8me2cc4z 6 개월 전 +1

    깔끔한 고려역사 정리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 @sjpark497
    @sjpark497 년 전 +15

    와 진짜 정리 개 깔끔하게 하셨네요

  • @Taiwan___No.1
    @Taiwan___No.1 8 개월 전 +3

    와 고려사 진짜 어려워 했는데 감사합니다!

  • @user-ww4ht3vs9o
    @user-ww4ht3vs9o 년 전 +11

    쉽게 역사를 설명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user-gk9iu6qm2u
    @user-gk9iu6qm2u 년 전 +2

    넘재밌고 유익해요

  • @user-jh8fc1zm6g
    @user-jh8fc1zm6g 년 전 +3

    정리 지리네..첨 2분 보고 보고 바로 구독

  • @okgreen22
    @okgreen22 년 전 +19

    ???? 이거 16분짜리 영상이였어요? 한 5분 지난거같았는데 ㅋㅋㅋㅋㅋ
    정말 혼까지 퓩 빠져서 듣게됐네요
    정리도 잘하시고 발성(?)도 좋으시고
    나도 이렇게 설명 잘했으믄 좋것당!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사요는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을 치고 들어가 보십시오 원문공부하세여

  • @user-skdkfktnenwh
    @user-skdkfktnenwh 년 전 +6

    저도 항상 고려역사는 흐름이 잘 안잡혔는데 이걸로 좀 정리가 됩니다. 잘보고 갑니다

  • @user-wu9cx7kj5s
    @user-wu9cx7kj5s 7 개월 전

    잘 봤습니다. 감사!

  • @user-qy3mb9hr4f
    @user-qy3mb9hr4f 년 전 +13

    우리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금이나마 느껴봤습니다.
    좋은 내용 잘봤습니다.

  • @TV-jm7fd
    @TV-jm7fd 년 전 +20

    와우! 고려편!!
    정말 감사합니다!!

  • @shanestory3879
    @shanestory3879 년 전 +8

    씀작가님 최고!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 @user-oz7lb6ey1y
    @user-oz7lb6ey1y 년 전 +276

    긴 고려사를 정말 간단명료하게 정리해주시네요~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잘 보고 있고 응원합니다~~

    • @user-vw1zt3vj9n
      @user-vw1zt3vj9n 년 전 +11

      명분없는사대주의 시작이 나라를 훔친자들이 결국 자기들의 욕망을채우기위해 만든 조선 이라는이름
      후손들을 두고두고 괴롭혔네요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안핑 시(Anping City 안평성安平城), 그리고 타이욘 시(Tayoan City 대만성台灣城)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 @STARGATE_SGC
      @STARGATE_SGC 년 전

      @@user-vw1zt3vj9n 고려시대에는 노비가 없었는 줄 아나보네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지배층이 있으면 피지배계층이 있기 마련인데요!
      고려 광종의 개혁은 결코 백성들을 위한 개혁만을 한게 아니죠!
      광종의 정적이 되는 권세가들을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을 한 거죠!
      그 와중에 권세가들에게 불쌍하게 당한 백성들이 개혁의 수혜자가 된 것이고요!

    • @user-tt1dg1lo8j
      @user-tt1dg1lo8j 년 전

      한글 만든거 빼고 칭찬할거 없는여자

    • @offsent3782
      @offsent3782 년 전

      고려사가 길게 뭐있나요? 조선보다 짧은데

  • @jaeyunseo7255
    @jaeyunseo7255 년 전

    이해가 쉽도록 잘 구성되어 있네요.

  • @user-cw8nz9sb4b
    @user-cw8nz9sb4b 년 전 +76

    짧지만, 고려 500년 역사 너무 잘 봤습니다~~
    대단합니다!!

    • @user-xh8tw9su8f
      @user-xh8tw9su8f 8 개월 전

      조선의왕은 쿠데타의명분을위해 고려와왕들을 깍아내리는 역사를썼다 하지만 고려는 강한나라였다 세계최강이던 몽골에게 나라를지킨 유일한나라였고 일본은 넘볼수조차없었다. 한편 조선은 쿠데타왕을 왕이라생각하지않았고 간신만 넘쳐나 결국 굶어죽는패망국가가되어 일본의침략이아닌 조선의왕은 이완용이란꼭두각시를 세워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팔아먹은거다.

    • @user-if5lz1hy5g
      @user-if5lz1hy5g 8 개월 전

      최신순 내글 참조

  • @user-ur9zj3oe7e
    @user-ur9zj3oe7e 11 개월 전 +78

    고려가 한반도의 전성기였는데 역사자료가 많이 없어 안타깝..
    장신구, 옷 엄청 화려했던 것 같은데..
    제대로 고증해서 드라마 만들면 진짜 국뽕 올라올듯..

    • @vivivi3865
      @vivivi3865 11 개월 전 +10

      한 5달 뒤에 고려거란전쟁 사극 나옴

    • @user-jc62a7v28
      @user-jc62a7v28 9 개월 전 +18

      나 처음에 고려 드라마 봤는데 진짜 처음엔 우리역사 개조 빡세게해서 판타지로 만든줄 알았음... 너무 화려하고 예쁘고 사람들도 다 깨끗해서...
      신라도 부자나라에 ㅈㄴ 화려했는데 사람들은 조선만 보고 한국역사 보잘것없다고 하는거 진짜 답답해 죽겠음

    • @vivivi3865
      @vivivi3865 9 개월 전 +4

      @@user-jc62a7v28 그마저도 당대 실제 생활상 반의 반도 제대로 구현 못한 거... 다 불타 없어져서 그렇지 걍 건축 규모부터가 조선이랑은 천지 차이였음. 심지어 조선시대 선비조차도 이렇게 말함. >>>
      "생각해보면 고려에서 나라를 세운 이래 물력의 풍부함은 우리 조선이 거의 미치지 못할 바이다. 석물을 세운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다[고려]를 보고 나면 다른 물[조선]은 시시하게 보인다더니 정릉의 석물을 보고 나니 길가의 소소한 석물들을 마주칠 때마다 저게 무슨 애들 장난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유만주, 흠영』

    • @user-tj5dl3kl8u
      @user-tj5dl3kl8u 9 개월 전 +9

      갠적으로 고구려 고려시대때의 사극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조선시대 사극은 솔직히 너무 많이나왔구요.... 태조 이성계부터 순종 이척까지 대중매체에서 안다뤄진 왕이 1명도 없을정도로 조선시대 사극은 너무 많이 나왔음

    • @holidaysummer9256
      @holidaysummer9256 9 개월 전 +1

      @@user-tj5dl3kl8u지겨워요 맨날정도전 당파쌈

  • @LIM-HA-NA
    @LIM-HA-NA 년 전

    유익한 영상 감사해요 ❤👍💯❤

  • @cadillacgolden9713

    너무 좋다 이런거 쉽게 설명해주시고 장황하지도 않고

  • @Ha-uw5do
    @Ha-uw5do 년 전 +10

    와~~~ 이언니 요약 짱!
    흐름을 이해하기 쉽게 넘 좋다!ㅎㅎ

  • @user-cv3er1qj8y
    @user-cv3er1qj8y 년 전 +5

    꿀잼입니다!!

  • @user-ey4fp7dw2t
    @user-ey4fp7dw2t 년 전 +16

    나레이션 쵝오!!!

    • @jksmm1
      @jksmm1 년 전

      한국고전종합에 가시면 있습니다 모든 실록

  • @hamo3291
    @hamo3291 7 개월 전

    오우 영상 ㅇㅈ합니다. 완전 유용해요!

  • @user-rl7kv7xr8v
    @user-rl7kv7xr8v 년 전 +20

    한능검 준비중인데, 알찬영상 감사합니다 ㅎㅎ 매우 유익해요!!

  • @user-de5cr6dt7m
    @user-de5cr6dt7m 년 전 +298

    한국사 공부하면서 고려사 파트가 되게 복잡하고 어려웠었는데 이 영상 보니까 아 삼별초 항쟁이 저때 나왔구나 하고 머릿속에서 그냥 알고만 있던게 흐름 정리가 되네요!! 재밌어요ㅠㅠ 다음편도 보고싶네용
    정말 유익했습니다 감사해요

    • @SanseoTV
      @SanseoTV 년 전

      ....... ㅡㅡㅡㅡㅔ.0

    • @mimik8846
      @mimik8846 년 전 +1

      고려 공부하셨으면 한국인은 고려조선인이 맞음니까? 아니면 초창기부터 한국 따로 고려 조선 따로 있었음니까? 대부분 한국인들은 조선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 @user-cn7qn8ij3n
      @user-cn7qn8ij3n 년 전 +14

      @@mimik8846 직금의 독일인들이 자기자신을 프로이센인이라고 하지않고 튀르키예인이 자기를 오스만인이라고 말하지않고 러시아인이 소련인이라고 하지않듯이 한국인도 현재의 국호에 따른 명칭을 쓰는것 아닐까요

    • @Book_HI
      @Book_HI 년 전 +3

      @@user-cn7qn8ij3n 튀르키예 = 돌궐 = 오스만 = 터키 다 같은 말

    • @k7886
      @k7886 년 전 +6

      그작은 강화도섬에서 30년동안 몽골군을 막았다고 믿는것인가?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한가? 고려의 영토는 대륙동부해안과 만주에 이어 한반도 였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삼별초는 그후 오키나와까지 점령하여 류큐왕국을 만듭니다
      그작은 강화도에선 그게 가능할까요
      강화도의 본래땅은 지금의 산동일대입니다
      자세한 내용 유튜브 책보고

  • @user-zn7up7tr3s
    @user-zn7up7tr3s 9 개월 전 +1

    중3아들역사시험어려워하는데
    잘이해가되겠어요^^
    콘텐츠간단요약 넘감사합니다

  • @seamandogman
    @seamandogman 년 전 +12

    훌륭한 영상입니다 짝짝짝 짝짝짝짝.

  • @user-js9ni5hv9s
    @user-js9ni5hv9s 년 전 +52

    핵심 및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대외적인 활동적인 역사를 보니 아이들이 보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 @user-if5lz1hy5g
      @user-if5lz1hy5g 7 개월 전

      최신순 내글 참조

  • @user-md4lb5pr5f
    @user-md4lb5pr5f 년 전 +10

    쏙쏙 들어와요 최고예요 진짜

  • @user-ze7mz5nl1z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user-ng9gf9pq7d
    @user-ng9gf9pq7d 13 일 전

    목소리 너무 좋아요!

  • @nabull7826
    @nabull7826 년 전 +5

    우왕 씀작가님 대단 하시당....ㅎ

  • @dustone
    @dustone 년 전 +8

    역사에서 미래를 배웁니다^^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 @kml4213
    @kml4213 년 전

    우왕 잼있게 보고가용 !!!

  • @user-tj5ni4ut1p
    @user-tj5ni4ut1p 년 전 +1

    구독 ❤했습니당 ^^♡

  • @user-qm7zd3ky5e
    @user-qm7zd3ky5e 년 전 +9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 @user-ne5jn4wj1u
    @user-ne5jn4wj1u 년 전 +6

    고려라는 나라는 멸망한지 오래되었지만 외국에선 여전히 우리를 고려라고 부르는게 참 재밌네요

  • @user-ws3tr7tr5r

    와ᆢ 고려사 간결하게 정리해서 말하네요 감사합니다

  • @user-if6nk7cg8i

    간단한 정리 감사 드립니다^^

  • @user-hr4oq2sw1f
    @user-hr4oq2sw1f 년 전 +5

    외워야 한다는 압박 없이 들으니까 왕꿀잼

  • @jemerytim6507
    @jemerytim6507 년 전 +6

    하아 쏨작가님 잘되는 모습에 제가 너무 좋아요!!! 조카 크는거 보는 기분ㅋㅋㅋㅋㅋㅋ

  • @user-fv7bh8lh3h
    @user-fv7bh8lh3h 년 전 +2

    잘 봤습니다

  • @-hellokorea-
    @-hellokorea- 년 전 +13

    오 심심한데 딱 올라왔다!!

  • @user-il6eq2hv5c
    @user-il6eq2hv5c 년 전 +42

    한국사 시험 직전에 들으면서 내용정리하면
    딱 좋을것같아요

  • @lljljljlljll
    @lljljljlljll 년 전 +5

    방장님 일제강점기 영상 만들어 주세요!😆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 @user-qv4kp2pm1e
    @user-qv4kp2pm1e 년 전 +3

    고맙습니다

  • @vovocafe
    @vovocafe 년 전 +14

    우리 역사는 재미있네요.
    아쉽기도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 @user-kt9pl9zd3y
    @user-kt9pl9zd3y 년 전 +100

    부족했던 고려사 정리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권력자의 리더쉽이 항상 문제가 되는 군요,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 @user-xh8tw9su8f
      @user-xh8tw9su8f 8 개월 전

      조선의왕은 쿠데타의명분을위해 고려와왕들을 깍아내리는 역사를썼다 하지만 고려는 강한나라였다 세계최강이던 몽골에게 나라를지킨 유일한나라였고 일본은 넘볼수조차없었다. 한편 조선은 쿠데타왕을 왕이라생각하지않았고 간신만 넘쳐나 결국 굶어죽는패망국가가되어 일본의침략이아닌 조선의왕은 이완용이란꼭두각시를 세워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팔아먹은거다.

    • @user-if5lz1hy5g
      @user-if5lz1hy5g 8 개월 전

      최신순 내글 참조

    • @user-if5lz1hy5g
      @user-if5lz1hy5g 7 개월 전

      최신순 내글 참조

    • @holaris8424
      @holaris8424 6 개월 전

      krplus.net/bidio/j7JqfmSAlJu-q3Isi=QXE2vHbWsmrFgrn1

  • @user-zx2hf5pe3t
    @user-zx2hf5pe3t 년 전 +23

    우와 고려왕조 500년 역사다~
    마침 심심했었는데 올려주네
    고마워 누나~~
    그리고 나 누나팬이야~~❤️

  • @user-dd8tk5to9s
    @user-dd8tk5to9s 년 전 +1

    구독합니다

  • @jun126
    @jun126 년 전 +5

    교과서잘듣고갑니다.

  • @right-J-2020
    @right-J-2020 년 전 +3

    오 이영상 보니깐 고려역사가 머리의 쏙쏙 들어오네요! 감사합니다!

  • @youngpyokim3441
    @youngpyokim3441 년 전 +3

    그림을 직접 그리신건가.....?? 귀엽다~

  • @user-tw8dt8sc4u

    재밌어요 !

  • @blabla0317
    @blabla0317 년 전 +1

    감사합니다.

  • @user-lk8pf3tl8e
    @user-lk8pf3tl8e 4 개월 전 +4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앞두고 밥 먹으면서 가볍게 볼려고 켰는데 .. 고려사가 정리되어버림 ㅋ

  • @user-cq6hw6ot3h
    @user-cq6hw6ot3h 년 전 +174

    우리가 아는 고려의 역사는 조그마한 한부분 뿐입니다. 몇분동안 많은 내용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user-tx2pq8xi2s
      @user-tx2pq8xi2s 년 전 +13

      고려땅은 지금의 심양이상입니다.......잘알고 작성합시다?

    • @kisangsong
      @kisangsong 년 전 +24

      @@user-tx2pq8xi2s 뭘 말하고 싶은건지?
      어그로인거 뻔히 보이긴하는대 심양이 어딘가 했네
      말이나 똑바로해요 말의 주재가 뭔지 모르겠네 뭐 고려가 중국 역사라 말하고 싶은건지
      고려가 땅이 심양보다 크다는건지
      한국말 쓰려거든 말이나 똑바로 해요
      조선족인가?

    • @Book_HI
      @Book_HI 년 전 +2

      @@kisangsong 몽골(원)이 침략해서 고려가 부마가 되고서 심양(만주)를 지배하는 권력을 고려국왕이 얻었습니다. 그래서 저 말을 하는 듯

    • @user-qb8jb8vj7t
      @user-qb8jb8vj7t 년 전 +3

      @@kisangsong 중국역사 한국역사가 따로 있나요??민족이란 개념이 들어선건 한참후 같은데 한반도의 역사로 보는게 맞지 않을까요? 한국역사는 1945년 이후~

    • @user-pt6uf1kx2g
      @user-pt6uf1kx2g 년 전 +10

      @@user-qb8jb8vj7t 그건 서양사 기준이구요. 서양사도 백년전쟁 이후부터 민족개념이 실체화되기 시작합니다. 한국사로 치면 통일신라시대부터 민족개념이 정립되기 시작되서 이비,패좌-최광수-이언년의 난 이후에는 단일적 민족의식이 완전히 확립된것으로 보입니다

  • @ppangjo3013
    @ppangjo3013 2 개월 전 +1

    고려거란전쟁보고 여기까지 와버렸네요ㅎㅎㅎ

  • @user-fg6pv6rp9r
    @user-fg6pv6rp9r 년 전 +2

    그림 넘 귀여워욤

  • @user-lx7vq2ub5o
    @user-lx7vq2ub5o 년 전 +117

    역사 배울때마다 기억에 남는건,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위기때마다 지배층들은 도망가도 민중들이 나라 지키고 살려냈다는얘기....이번 고려편에서도 여지없네요😅

    • @user-gq4lg5ox3b
      @user-gq4lg5ox3b 년 전 +16

      역사는 반복됩니다 지금 한국이 비슷하지요ㅎㅎ

    • @hamiltongold8798
      @hamiltongold8798 년 전 +7

      625도 마친가지
      앞으로도 그럴것임
      성남비행장
      김포공항 도
      그럴 용도는
      재명이가 똘똘한 쫄이없어
      아니겠지

    • @yi01471
      @yi01471 년 전 +9

      의병장이나 관군 장군들은 거의 전부 양반이었는데요?

    • @joyfulkim2653
      @joyfulkim2653 년 전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SovietPikachu1945
      @SovietPikachu1945 년 전 +14

      왕이 잡히면 패전이니깐 기회를 노리는 것이고, 충분히 수비나 수성을 할 수 있는데 왕이 떠나서 졌다는 의견은 당시 현장지휘관이 적군과 아군의 형세를 비교해 내린 판단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꼴입니다.
      설령 수비가 성공적이래도 왕이 고립되면 명령체계가 단절되는데다 군대 목표는 왕 구출 하나로 모이게 되고 이는 곧 적군에게 전략이 노출됬음을 의미하죠.
      시대나 환경에 따라 직접 왕이 야전지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안전한 곳에서 군사적 판단을 지휘관에게 주는 경우도 있는데 때에 따라 장단점이 다르기에 이게 정답이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 @intros5693
    @intros5693 년 전 +16

    고려 철령위가 요동에있었는데 금나라 서쪽으로 이동할때 우리나라 고구려 회복했어요 철령위에서 동쪽 선출령
    동북9성이잖아요

    • @jksmm1
      @jksmm1 년 전

      한국고전종합에 가시면 있습니다 모든 실록

  • @user-wt4tl9hv5o
    @user-wt4tl9hv5o 11 개월 전 +1

    보내주신 스벅쿠폰 좋았고 책도 잘 읽고 있습니다. 쏨 화이팅!!

    • @Epic_Ssom_History
      @Epic_Ssom_History  11 개월 전

      광호님 후기 남겨주시니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 @hackchorry
    @hackchorry 2 개월 전

    캬..한국사 공부중인데 이게 더 집중되는 이유는 뭘까요😂

  • @user-cp9wj2ps4c
    @user-cp9wj2ps4c 년 전 +43

    쏨 작가님의 내레이션 그리고 일러스트 , 역사 풀이 전개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다음 아편 전쟁도 보고 싶어예 ^^ 건강 하세요^^

    • @usersuperdopa
      @usersuperdopa 년 전

      뒤질날도 얼마 안남으셨는데 뭘 그렇게 아등바등하슈? ㅋ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안핑 시(Anping City 안평성安平城), 그리고 타이욘 시(Tayoan City 대만성台灣城)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 @user-if5lz1hy5g
      @user-if5lz1hy5g 8 개월 전

      최신순 내글 참조

  • @user-is2ry4lo8r
    @user-is2ry4lo8r 년 전 +18

    역사는 늘 되풀이된다.

    • @jksmm1
      @jksmm1 년 전 +1

      고려사요는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을 치고 들어가 보십시오 원문공부하세여

    • @user-tp1uk7hl2h
      @user-tp1uk7hl2h 년 전 +1

      아니요. 비슷하게 보일 뿐, 전혀 다른 개개의 사건들일 뿐입니다.

  • @user-kd4yc5lz7h

    흥미롭군오

  • @dhkim410
    @dhkim410 년 전 +148

    멸망 직전까지도 영토 확장을 한 고려 멋있다.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blog.daum.net/greatchosun/8921617?fbclid=IwAR0ufuR7QSgqwViTKWBUVQAsUSMq1SPQDljVcYGB2lCx_OJe53OVhlj19jo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 @user-se3np7gj9b
      @user-se3np7gj9b 년 전 +22

      심양은 고려땅임 조선이 개국하면서 잃어버린거임 위화도회군하는 이성계가 철령이북 지키려고 나가는데 고려지도가 저리 작은데 그럼 강원도로 진군하지 요동을 뭐하러가나 지금의 한반도를 한참넘어가 고려의 영토임 역사서가 다 타버려서 찾기가 어려울뿐

    • @user-wk5px8nm2n
      @user-wk5px8nm2n 년 전 +3

      근데 멸망 직전 까지 갔다는건 국력이 쇠약해졌다는 얘기인데.. 국력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영토확장이 가능함??

    • @user-ok8sw9vx4x
      @user-ok8sw9vx4x 년 전 +3

      고종도 간도 침공 😆 😆 😆 😆

    • @user-yn7lm7sg1v
      @user-yn7lm7sg1v 년 전 +10

      @@user-wk5px8nm2n 음 당시 명나라 국력 보건데 성공해도 바로 명나라 한태 찢길듯

  • @Epic_Ssom_History
    @Epic_Ssom_History  년 전 +34

    👉3:28 오타 정정합니다! 성종11년(992)에 설치한 고려시대 국립대학 [국자감]
    고려의 전성기를 연 성군, 제8대 현종의 시대는 구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방대한 양을 압축한 영상이라 구체적인 인과관계는 생략돼있다는 점 참고 바랍니다.
    💚쏨작가 신간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
    - 교보문고 : bit.ly/45MEx3l
    - 예스24 : bit.ly/3RgQd9Z
    - 알라딘 : bit.ly/44QHO0h

    • @user-ub2ij2sf3m
      @user-ub2ij2sf3m 년 전

      고려 아니고 고리다. 그리고 영토는 조선보다 넓었음

    • @user-fq9je1en4u
      @user-fq9je1en4u 년 전

      @@user-ub2ij2sf3m 1

    • @jksmm1
      @jksmm1 년 전

      국자감이라고 하였소 거 중국땅에 버젓이 있다오 더 공부하시오 원문공부를 더 하시오

    • @dynamo3590
      @dynamo3590 5 개월 전

      🤠🤠 👋 👋 😎😎 👍👍

  • @lhj2276
    @lhj2276 년 전 +94

    우리나란 조선의 정신이 아닌 고려의 정신을 본받았어야했는데... ㄲㅂ

    • @modularsolarid2000
      @modularsolarid2000 11 개월 전 +1

      고려도 자세히 보면 여진의 발흥 이후부터는 조선이나 별 반 다를 거 없는데? ㅋ

    • @user-xc9yl8yr1g
      @user-xc9yl8yr1g 10 개월 전 +1

      고려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면 둘중 하나일듯. 지금 우리가 중국인이거나, 아니면 영토도 더 넓고 진취적인 민족이거나.

    • @Iamagoodboyy
      @Iamagoodboyy 8 개월 전

      @@user-xc9yl8yr1g후자임ㅋㅋ

    • @taeinyi2123
      @taeinyi2123 개월 전

      팩트 : 고려의 정신이었으면 지금 나라 갈갈이 다 찢어졌다 호족들때문에

  • @yongjj9348
    @yongjj9348 년 전 +13

    李: 나무 밑에 자식
    王: 하늘 아래 어른

  • @il4033
    @il4033 년 전 +27

    개인적으로 고려역사가 조선보다 재밌음 ㅋㅋㅋㅋ

    • @user-bg9xh1hk4u
      @user-bg9xh1hk4u 년 전 +3

      재밋긴해도 개고생했지..유목민들 전성기라..

  • @user-ol5yn5ut2i
    @user-ol5yn5ut2i 년 전 +1

    그림이 엄청 귀엽네요 ㅋㅋ

  • @user-xh5dc1iu8k
    @user-xh5dc1iu8k 년 전 +1

    좋아요 .

  • @user-kd2rj3ns4q
    @user-kd2rj3ns4q 년 전 +33

    1차 여요전쟁 때의 성종도 나쁘지 않았지만 제3차 여요전쟁에서 승리한 8대 현종에서 14대 헌종까지는 고려의 최전성기로 영상에서 말한 벽란도가 활성화되고 고려사신이 송에 갑질하던 어떤 분의 말대로 한반도 최전성기죠. 예종과 인종 시기에 외척이 등극하고 서경파가 몰락하면서 망테크 타다가 의종 때, 무신란으로 위기로 가죠.

    • @geumgwang6662
      @geumgwang6662 년 전 +7

      성종은 성군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해요
      현종~헌종까지가 최전성기가 맞는듯요~
      특히 8대 현종이 초반에는
      기반이 없어 고초를 겪었지만 후반에는 고려 최고의 기반을 닦아 탄탄대로를 여는 초석이 되었지요 ㅎ
      당시 거란 금 송 등이 고려에
      쩔쩔매는 상황이었지요 ㅎ
      송나라 소동파가 고려사신이 횡포를 부리는 것을 비판을요 ㅎ

    • @user-tp1uk7hl2h
      @user-tp1uk7hl2h 년 전

      @@geumgwang6662 고려가 거란의 세 차례 침입을 막긴 했으나, 이후에도 군사력으로 거란을 압도한 적은 없습니다. 당장 보주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상황에서도 고려는 거란군에 이기질 못했어요. 요ᆞ금은 고려의 상국으로 있었는데 뭘 쩔쩔맸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johnpark9523
      @johnpark9523 5 개월 전

      ​@@user-tp1uk7hl2h찐따 씨 그 형식적 상국이라는 건 아무 소용 없어요. 고려는 송에 갑질했고 요에게는 당당하게 할 말 했습니다. 조공책봉체제가 실질적인 상하관계인줄아나봐요. 요나라도 형식상 북송을 상국으로 모셨는데 요나라가 북송똘마니국가였던가요?

    • @johnpark9523
      @johnpark9523 5 개월 전

      ​@@user-tp1uk7hl2h병자호란 후에 조선이 청에 보낸 조공사절하고 귀주 대첩 직후에 고려가 요에 보낸 조공사절이 같은 의미인줄 아나봐요 ㅋㅋ

  • @ynhnk8259
    @ynhnk8259 년 전 +5

    역시 한국사는 들어야 재밌어

  • @ddizzel01
    @ddizzel01 년 전

    좋네요

  • @user-fc7db9zg1f
    @user-fc7db9zg1f 년 전 +8

    2:15 광종 이야기는 이미 다룬적 있어으셔서 떠오르네요

  • @dustone
    @dustone 년 전 +6

    역사 속에서 삶을 배우고 익힙니다

    • @jksmm1
      @jksmm1 년 전

      고려는, 남쪽은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遼水)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 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金) 나라와 맞닿았고, 또 일본ㆍ유구ㆍ담라(聃羅)ㆍ흑수(黑水)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ㆍ모인(毛人) 등 나라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합병(合倂)되니, 지금의 나주도(羅州道)와 광주도(廣州道)광저우(광주)(廣州)이다.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京師 남송의 서울 변경)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燕山道)로부터 육로(陸路)로 가다가 요수(遼水)를 건너 동쪽으로 그 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허베이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안후이성ㆍ양절(兩浙)이남 장쑤성과 저장성ㆍ광남(廣南)廣南省 광남성)은 베트남 남중부 지방의 성ㆍ복건(福建)복주(福州, 현 푸저우시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등주(登州) ...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중국산동반도 동쪽 끝에 위치하였던 행정구역의 이름ㆍ내주(萊州)중국 최대 석재시장 산동성 라이저우(萊州내주)ㆍ빈주(濱州)빈저우 시(빈주시,ㆍ체주(棣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원풍(元豐) 이후부터 매양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명주(明州) 정해(定海)에서 출항(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북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하지(夏至) 뒤에 남풍(南風)의 바람 편을 이용하는데, 5일이 못 되어 곧 해안(海岸)에 닿는다. 옛적에는 봉경(封境)이 동서는 2천여 리, 남북은 1천 5백여 리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연속되었다. 옛적에는 대요(大遼)와 경계를 했었는데, 뒤에 대요의 침벌을 받게 되매, 내원성(來遠城)을 쌓아 요새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압록강을 믿고 요새로 한 것이다.압록강의 물 근원은 말갈(靺鞨)에서 나오는데, 그 물 빛깔이 오리의 머리 빛깔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요동(遼東)에서 5백 리쯤 흘러가다 국내성(國內城)을 지나서 또 서쪽으로 흘러 한 강물과 합류하니, 이것이 염난수(鹽難水)이다. 두 강물이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안평성(安平城)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안핑 시(Anping City 안평성安平城), 그리고 타이욘 시(Tayoan City 대만성台灣城)고려에서는 이 강물이 가장 크다. 물결이 맑고 투명하여 지나는 나루터마다 모두 큰 배가 정박해 있는데, 그 나라에서 이를 천참(天塹)으로 여긴다.
      강물의 너비가 3백 보(步)인데, 평양성(平壤城)에서 서북으로 4백 50리이고, 요수(遼水)에서 동남으로 4백 80리에 있다. 요수에서 동쪽은 옛날 거란에 소속되었는데, 지금은 그 오랑캐 무리가 이미 멸망되었고, 대금(大金)에서는 그 땅이 불모지(不毛地)이기 때문에 다시 성을 쌓아 지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갓 왕래하는 길이 되었을 뿐이다.

    • @user-vu8yv5db6f
      @user-vu8yv5db6f 년 전

      한심하네

    • @jksmm1
      @jksmm1 년 전

      @@user-vu8yv5db6f 한국고전종합 이라고 치고 들어가 보세여 거기 다 있어여

  • @user-nv8kf9bj1y
    @user-nv8kf9bj1y 년 전 +12

    예쁜목소리로 국사를 들으니 국사 6년배운것보다 쏙 들어오넹 .. 잘때 또 들어야징

  • @user-sp9re7yl1n
    @user-sp9re7yl1n 년 전 +1

    사랑해요

  • @user-sw2cs4hf5l
    @user-sw2cs4hf5l 년 전 +1

    나래이션좋네요

  • @Harry_Mione
    @Harry_Mione 11 개월 전 +6

    사실 세계사에 한 국가가 영토와 국민을 보전하면서 같은 왕조로 500년씩 존속하는 일은 꽤 드문 일인데 고려나 조선이 그게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로 건국 초기 광종이나 태종 같은 강력한 왕이 최고권력자인 왕이라는 자리의 정치적 기반을 안정시키고 중앙집권을 공고히 한 데에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음.

  • @user-nc1rg3uf8p
    @user-nc1rg3uf8p 년 전 +13

    고려는 현종부터 숙종까지가 진짜 전성기

  • @efefaw457
    @efefaw457 4 개월 전 +1

    정리 지리네여...요즘 고려 거란전쟁 보는데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믿습니다 최수종!

  • @user-ff7oy5bj1o
    @user-ff7oy5bj1o 년 전 +6

    3:29 5도양계 완성은 현종때 아닌가요?

  • @user-pw9ek6ln6t
    @user-pw9ek6ln6t 년 전 +67

    이때 고려는 남녀가 어느정도 평등한사회 여자가 재혼도 가능하고 재산도 남녀 차별없이 분배했으며 재혼한여성이 자식이 있으면 현남편이 동의 하면 같이 살수도 있었다!! 그리고 부모를 여자가 모실수도 있었다!! 지금하고 비슷함

    • @djdijesjkxkskqpuznd
      @djdijesjkxkskqpuznd 년 전 +5

      조선 전기까지만해도 아니 17세기까지만해도 그랬음

    • @topup-
      @topup- 년 전 +3

      그만큼 ... 전쟁으로 많이죽어서 이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바라보면 좋아만보이죠.

    • @jsgun6170
      @jsgun6170 년 전

      ​@@topup- 고려는그래도 유교 공자맹자왈은 안해서 국방력은 조선전체보다 고려전기가 더쌔었슴 조선은 공자맹자가라사대하다 지랄하고자빠진 무능한나라인건 확실함

    • @user-cd4mp7rg1o
      @user-cd4mp7rg1o 년 전

      @@khbmedia 인류의 보편적이 아니라 현대의 보편적아님?

    • @user-jf7xd4ch2x
      @user-jf7xd4ch2x 년 전

      성리학, 유교사상 개쓰레기

  • @smgm1293
    @smgm1293 년 전 +255

    찬란한 고려 500년의 역사를 잘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nv9qy8ko5y
      @user-nv9qy8ko5y 년 전 +5

      춘식이당

    • @joyfulkim2653
      @joyfulkim2653 년 전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조롱하며 부정하는데 고조선문명이 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뿌리부터 흔들기때문이다

    • @user-hs4df7ng1h
      @user-hs4df7ng1h 년 전 +22

      찬란하지는 않음. 거란한테 복종했고 차례대로 여진 원 명에 복종함. 충선왕 충혜왕등 굴욕적인 이름을 하사받고 일본한테 원정갔다 학살당함

    • @user-ww9rh6nw2i
      @user-ww9rh6nw2i 년 전 +60

      @@user-hs4df7ng1h 학살같은 소리한다.ㅋㅋㅋ 태풍으로 조진거지 무슨 학살 정말 웃기다.

    • @JKJ0509
      @JKJ0509 년 전 +37

      고려시대때 서희가 되찾은 강동6주는 압록강 북쪽입니다 ‘강동’의 뜻은 강의 동쪽을 뜻합니다 즉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영토를 되찾아서 강동6주를 설치한 것입니다 만약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강남6주가 되어야 합니다 압록강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서쪽 영토가 지금의 요하 동쪽 철령까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북동쪽 영토가 두만강 북쪽 688리 지점인 공험진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기술되어있는 고려의 영토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원나라가 무너진 후 명나라가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키겠다고 고려에 통보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에는 철령이 함경도 안변이라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려는 그 땅을 지키려면 어디로 군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함경도이겠죠? 그런데 왜 요동정벌군을 보냈겠습니까? 철령이 요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자 당시 고려 북쪽 지방의 수령들이었던 조휘와 탁청 등이 그 지역을 갖다 바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는 고려의 북쪽 영토를 직속령으로 편입시키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이 그 땅을 수복하기 위해 인당과 유인우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쌍성총관부를 점령케 합니다 이때 인당은 압록강을 건넜고, 유인우는 두만강을 건넜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쌍성총관부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 교과서에는 쌍성총관부가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완전히 왜곡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민왕이 북방 영토를 회복한 후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자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우왕과 최영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정벌토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태종때 명나라와 국경을 합의했는데 고려시대때의 우리 영토였던 철령과 공험진까지를 조선의 북방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북방으로 보내 4군 6진을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이 현재 우리가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즉 4군 6진이 간도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역사학 교수들, 역사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일제의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곡된 우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한사군(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하본기]의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위,촉,오의 분열을 끝낸 나라는 사마염이 건국한 진나라 입니다 [태강]은 진나라 무제였던 사마염의 연호입니다 사마염은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의 지방행정조직을 점검하기 위해 [태강지리지]라는 지리서를 편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태강지리지]는 낙랑군이 현존했을때의 책이기 때문에 정확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태강지리지]가 당나라때에는 존재했기 때문에 사마정이 그 책을 인용해서 [사기색은]에 기록한 것입니다
      갈석산은 하북성에 있는데 아주 유명한 산입니다 고조선의 영토가 거기까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한사군이 북한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석산이 평양에 있습니까?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내려왔나요?
      평양에 있었던 것은 낙랑군이 아니라 고조선의 유민들이 건국한 낙랑국입니다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낙랑공주는 낙랑국 왕의 딸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라가 고조선을 식민 통치하기 위해 세운 낙랑군은 독립된 나라가 아니라 지방 행정 기관입니다 따라서 지방 행정 기관인 낙랑군의 수령은 낙랑왕이 아니라 낙랑태수입니다 따라서 낙랑태수의 딸은 낙랑공주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북성에 있었던 낙랑군과 평양에 있었던 낙랑국은 서로 다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갈석산이 있는 하북성이 고조선의 땅이였기 때문에 광개토태왕때 고구려가 옛 땅을 되찾기 위해 거기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가 고대의 요하였고 난하의 동쪽이 요동, 서쪽이 요서였던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 애국심이 생기지도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어떤 의무나 희생을 치를 가치도 전혀 못느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검찰처럼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인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영달만 좇는 것입니다 이게 다 우리 역사의 뿌리가 잘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의도대로 민족정신이 말살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서 제대로된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현재의 코로나 방역, 한류열풍, G8국가로의 진입 가능성이 타진 되는 상황등 우리의 자부심을 높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우리의 원래 모습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는 현상이 바로 K방역, 한류열풍, G8국가로의 진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도 제대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 @user-bf6cx7en2t
    @user-bf6cx7en2t 년 전 +6

    5도 양계 부분은 현종이 아닐까요~? 성종이 지방통치에 기여한건 12목 설치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영상 너무 잘 봤습니다👍

  • @Earth-kg8ft
    @Earth-kg8ft 년 전 +1

    우리 한반도는 늘 격동의 시기네요.
    지금이나 그때나 흐름은 비슷하네요.

  • @user-fn9fc1hi1p
    @user-fn9fc1hi1p 년 전 +18

    한반도에서 자주적이던 시절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인듯

  • @user-vz9sk6mx3d
    @user-vz9sk6mx3d 년 전 +29

    외교적, 대외적 유연성은 고려가 훨씬 앞섰지